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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7 월드 키카의 탄생과 우려
재외 동포들의 위상이 올라 감에 따라 한국 內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월 28일부터 3일 동안 한국 여의도 국회 헌정 기념관에서 세계한인교류협력기구(WKICA / World Korean Interchange Cooperation Association 이하 월드 키카) 세계총회가 열려 새로운 한민족 네트워크 형성과 희망찬 출발을 약속 했다. 前 농수산부 장관과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김영진 상임대표는 총회 환영사를 통해 “미주에서 한인들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미국 연방의회가 매년 1월 13일을 ‘미주 한인의 날’로 定하였다”고 말한 후 “그러나 국내의 관심과 배려는 미흡한 것이 현실이나 앞으로 7백만 해외 동포들의 권익신장을 위해 노력하겠다” 고 밝혔다. 이어서 “월드 키카는 국내에서 ‘해외 한인의 날’ 제정 청원을 비롯해 동포지원 사업 발굴과 교류 협력 사업 전개, 동포 법적 지위 회복운동 전개 및 동포청 설립 추진, 차세대 및 입양인에 대한 문화 예술, 역사, 한글 보급 운동 등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총회에는 약 20개국에서 125여명이 참석했는데 상당수 목사와 장로 등 기독교인으로 구성돼 이 단체의 정체성에 의문을 표시하는 참석자도 있었다. 또한 해외 지역 대표성이 없는 종교 단체 및 사회 지도자들이 참석하여 재외동포 관련 사업을 추진할 경우 쌍방향 동력이나 수혜 당사자들의 협력도 받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 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한국 정부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해외 동포 공식기구는 각 지역 한인회뿐인데 이런 대규모 행사에 각 지역 대표인 한인회장들의 공식적인 참석이 없었다는 점을 크게 우려했다. 아무리 한국에서 순수한 목적을 담고 자발적으로 출발해도 재외동포들의 대표가 참석하지 않은 국내인들의 주도로 만들어진 단체는 태생적 한계가 있으며, 해외 지부 조직 결성 시 단체의 정통성 시비와 유사 단체간 반목의 불씨를 유발할 수도 있다. 재외 동포들이 본국 정부와 단체에 원하는 것은 똑 같은 목적의 여러 단체보다 똑똑한 단체 하나라도 제대로 동포들을 위하여 봉사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재외 동포들을 위한 정부 공관 外에 관련 대표적인 단체로 재외 동포재단, 재외 동포 교육진흥 재단, 재외국민 참정권 연대 등이 이미 활동을 있으며 이런 단체 외 ‘나 홀로’ 단체도 수 없이 많다. 월드 키카가 순수 민간 단체로 출발하면서 활동중인 동포 관련 단체들과 업무와 행사에 중복성이 있는지 여부도 세밀하게 검토해야 할 사항 중에 하나다. ‘세계 한인의 날’을 1월 13일로 정한 결정에 재미 동포를 제외한 타 지역 동포들은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월 13일은 미국 하와이 이민을 떠난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민 1백주년 기념사업회와 재미 동포 지도자들의 끈 길긴 노력으로 미 연방 정부 의회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 하여 결정한 매우 소중한 날이기도 하다. 미국에 있는 많은 소수 민족들 중에서 한인 커뮤니티만이 유일무이하게 하루를 지정해 기념하는 특혜를 받은 날이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미국에서 동포들의 개천절이 만들어진 셈이다. 재미 동포들은 앞으로 어떤 희생을 치러도 그토록 공들여 의회에서 통과한 ‘미주 한인의 날’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재미 동포에게 의미 있는 1월 13일이지만 중국이나 일본 동포들에게는 뜻이 없는 무의미한 날이다. 재미 동포를 제외한 다른 동포들이 ‘미주 한인의 날’에서 ‘미주’자 대신 ‘세계 한인의 날’로 1월 13일을 하자는 주장에 극구 반대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들의 주장이 틀리지도 않았고 충분히 이해도 된다. 그러면 재외 7백만 동포 모두를 만족 시킬 수 있는 날은 언제 인가. 역사를 다시 찾아 보아야 되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한국 국경일로 정해져 있는 삼일절이나 광복절 또는 개천절을 들고 나오는 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결론적으로 모든 재외 동포를 만족 시킬 수 있는 특별한 날을 결정하기가 힘들다. 그렇게 결정 하기에 힘들면 한반도를 제외한 지구촌에서 처음으로 재외 한인의 존재를 공인하고, 존중하여 미국 의회가 통과 시킨 1월 13일 ‘미주 한인의 날’을 ‘세계 한인의 날’로 거부할 이유도 충분치 않다. 월드 키카는 창립취지문 중에서 “코리안 디아스포라 700만, 한민족 이민 100년의 고난의 발자취는 그 자체가 대한민국의 근대화와 세계화의 놀라운 역사였다.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첫 이민의 닻이 내려진 후, 전 세계 175개국에 진출하여 온갖 역경과 시련을 극복해 온 한민족 해외동포들의 땀과 눈물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구어 온 한 주춧돌이 되었다”고 재외 동포의 희생을 상기 시켰다. 재외 동포들의 권익과 발전을 위하여 탄생한 월드 키카가 동포 사회와 함께 친근한 동반자로 역할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재외 동포들의 대표기관인 각 나라, 각 지역 한인회와 함께 행사를 진행해야 하며 재외 동포 재단 등 유사 기관과의 중복성을 피해야 할 것이다. 세계대회 마지막 날 토론회에서 막말이 나와 참석자들의 눈살을 찌프리게 한 해프닝도 있었지만 월드 키카가 2박 3일 숙식 제공과 안상수 인천 시장의 만찬 초청 등 재외동포들을 안기 위한 노력은 높이 평가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월드 키카가 재미 동포들을 제외한 타국 동포들에게 ‘세계 한인의 날’로 1월 13일을 받아들이도록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따라 첫 능력을 가름하게 될 것이다. 또한 월드 키카가 보다 효과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동포들의 호응을 받기 위해선 재외 동포들의 특수한 환경과 지역 단체장들의 역할에 이해가 앞서야 한다. 이번 행사를 통해 국내, 외 동포가 하나 되는 네트워크를 형성 되어 7천만 한민족 연대가 이루어지는 날을 기대한다. 김동열 (서울에서 dyk47@yahoo.com) 사진설명: 지난 28일에 열린 세계대회 첫날 기념식에서 ‘미주 한인의 날’이 미 의회에서 결정 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진 버지니아 주 출신 전 조지 알렌 연방 상원의원이 축사를 하고 있다.
2007-02-14 예민한 참정권 회복
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해외 단기 체류자와 영주권자에게 투표권을 부여 하자는 여러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최근 한나라당 김덕룡의원이 제안한 선거법 개정안은 과거 4명의 국회의원이 제출한 개정법안 중 좋은 점을 종합해 만들어 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개정 내용의 요점은 2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재외 국민 중 누구에게 투표권을 부여 하느냐는 것과 둘째는 어떤 선거에 투표권을 행사 하느냐는 선택권이다. 이 두 문제는 과거 유신헌법 전에 실시된 결과도 있고, 再 시행에 경제적인 어려움도 크지 않다는 보고도 나와 있지만 다시 추진하기 에는 많은 정치적 이해득실이 따르고 있다.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은 이미 선진국가에서 실시하는 제도 이며 글로벌 사회에 피할 수 없는 추세 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지연 되는 것은 대선이나 국회의원 비례 대표 선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특히 當, 落이 50만 표 내외로 근소하게 결정되는 대선의 경우는 어떤 선거 개정법을 채택 하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 결과에 따라 전부 아니면 전무인 관계로 여, 야 모두에게 리스크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법 개정안에 더욱 열을 올리는 야당은 재외국민 투표권자의 범위를 단기 체류자는 물론 영주권에게까지 확대 시키자는 요구에 비해 여당은 단기 체류자에 국한 시키자는 개정안을 관철 시키려고 한다. 야당은 재외 국민들의 보수성향에 큰 기대를 갖고 있다. 특히 현 여당의 친북 정책과 반미 성향에 적대감을 갖고 있는 재미 영주권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할 경우 총 1백7십만여 재외 동포 유권자중 과반수 이상의 지지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비해 여당은 단기 체류자에게만 투표권을 부여 하자는 개정안을 제출 하고 있다. 단기 체류자 중 상당수가 젊은 세대와 유학생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대문에 보수적인 야당보다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하리라는 기대감에 재외국민 유권자 숫자를 제한 하려는 것이다. 결국 여당과 야당은 각각 자당에 유리한 정략적 기준에서 개정안을 제안하고 있기 때문에 그 법안 통과가 처음부터 어렵게 되어 있다. 이번 국회에서 선거법 법안의 개정 움직임을 두고 재미 동포들 가운데 찬반의 논란이 크게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13일이 매년 “한국인의 날”로 미국 내에서 공식적으로 결정 되면서 동포들의 위상이 높아지고 이에 여, 야가 주목하고 있다. 재외 동포 참정권 부여 반대 의견은 재외국민과 한국의 정치는 별개의 문제라는 주장이다. 즉 아무런 정치적인 관계가 없다는 주장이다. 참정권 행사를 통해 본국 정치의 병폐가 그대로 전염되어 동포 사회가 사상대결로 반목과 분열로 치달을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또한 동포사회 일부 지도자들이 우려 것은 거주국 정치 및 사회 참여가 지연 되고 본국 지향적인 해바라기 사회로 퇴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재외 동포 참정권으로 인해 수단 방법을 안 가리는 본국 정치인들의 악 영향이 동포사회에 미치고, 그로 인한 불법과 타락은 불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본국의 타락 정치 문화를 동포사회에 반입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다. 더불어 재외 동포 참정권은 거주국 주류사회에 진입하려는 노력을 경감시키고 2세 정치세력 육성에 나쁜 영향력과 기회도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반해 찬성론자들은 OECD(세계 선진국 모임)의 대부분 국가들이 재외 동포 참정권을 부여 하고 있는데 반대론자가 우려하는 병폐는 한번쯤 여과해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도 1999년부터 시행하고 있는데 별다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더욱 재외국민 참정권은 국적을 소유한 국민이 반드시 가져야 할 기본 권리이며 이번 기회에 본국 정부로부터 확실한 지원책을 요구 해야 한다고 열을 올리고 있다. 참정권은 정치권의 유, 불리를 떠나 당장 부여해야 할 기본 권리로 이것을 가지고 여, 야가 당리당략에 따라 저울질 하는 것은 유치한 발상이라는 주장이다. 재외 동포 참정권은 대선을 앞두고 서울 시민의 관심도가 올라 가고 있다. 일부 서울 시민들은 세금도 한푼 내지 않은 재외 국민에게 참정권을 허용하는 것은 권리와 의무의 연계성을 무시한 단견이라며 참정권 논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참정권 문제는 본국 국민과 재외동포들의 감정 대결로 번질 우려는 크지 않으나 서로의 이해와 한민족의 공감대를 형성할 숙제는 안고 있다. 한편 1백만 표 이상으로 추정 되는 재외국민 투표권에 의해 선거의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여, 야가 참정권이라는 순수성보다 當, 落에 관심이 더 큰 만큼 이번에 선거법 개정이라는 모험을 할지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여, 야가 과거에 써먹은 방법으로 재외 국민 참정권 회복에는 공감하지만 실행에서는 타이밍을 고의적으로 지연시켜 유보하는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을 이번에도 쓸 것이라는 주장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번 한국의 대통령선거는 일본의 내각제와는 달리 生, 死를 건 左, 右派의 피할 수 없는 숙명적 대결인 만큼 명분은 어떨지라도 여, 야가 쉽게 모험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 선거 전문가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가고 잇다. 2월 중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L.A 방문을 앞두고 한인 집중 거주지인 L.A동포 사회에서는 이미 재외 국민 참정권 회복 서명운동이 시작 되었다. 오는 2월 말이나 3월 초에 세계 한인회장 대회가 본국에서 열릴 예정인데 재외 동포 참정권 회복을 촉구하는 강력한 결의문이 나올 것으로 예상 된다. 올해 대통령선거는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 동포 사회에도 큰 회오리 바람을 불고 올 것만은 확실하다. (서울에서 dyk47@yahoo.com) 충남 안면도 근교 몽산포에서
2007-02-08 우리시대 명인 소리꾼 장사익
태평소의 한국적 감성을 암울했던 시대의 무거운 짐을 벗는 레퀴엠으로 해원하려 했을까.민중가요가 수명을 다해갈무렵,서해바다를 서민들의 삶터로 끌어오는 충남 광천읍내 겟것장터의 비릿내음으로 천지를 울리며 한 소리꾼이 나타났다.죽은 이를 위한 진혼곡,만가(挽歌)로 해원의 씻김을 하려는 몸짓어었을까. 한국인의 서정을 깊은 심장에서 울궈내는 소리의 명인 장사익! 어린시절 아버지의 장고장단에 흥얼거리며 자랐던 장사익은 태평소가 간직한 우리 소리에 몹시도 갈증을 느꼈다던 그는 늦깎이 음악시인이다.권위주의의 암흑시절, 민중의 희망을 노래했던 민중가수들의 처절한 소리가 민초들에게 자유와 인권,생명을 노래했다면 그는 폭압과 권위의 짓누름이 걷히고 허탈한 가슴을 쓸어안고 봄같지 않은 봄이 만연할 때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한국적 한과 서정을 깊은 시심으로 폐부를 짜서 우려낸 소리로 민주화시대,민중시대이후의 새로운 역사소리의 지평을 열었다.관조의 경지에 들어선 그는 이제 태평양을 건너 뉴욕,워싱턴,시카고,LA 등 팝의 메카 아메리카 대륙에 ‘한국의 소리마당을 펼치기 위한 대장정’을 준비하고 있다.한국화보 독자들을 위하여 본지는 “장사익 선생 자택에서 독점인터뷰”시간을 마련하였다. 인왕산 북한산을 좌우로 펼친 홍지동 산꼭대기 홍지동 산꼭대기에 담갈색 3층집을 찾는데 한참을 헤멨다.장사익 선생의 자택이다.사모님의 전화안내를 받고 이리저리 돌다가 산밑에 이르렀는데 “흰색차량이 맞죠?”하며 장 선생님의 목소리가 핸드폰을 울렸다.정말 반가운 목소리였다.사모님과 선생님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2층 거실에 들어서는 순간, 아!감탄사가 터졌다.탁트이는 눈앞에 좌우로 인왕산과 북한산이 떡!버티고 있잖은가! 한국의 소리를 다듬고 빚어 엮어내는 이 시대 명인 소리꾼 장사익 선생의 영감을 샘솟게 하는 “영터”가 아닐까며 뇌아렸다. “선생님,곡을 준비하시면서 답답하실때는 주로 어디로 가십니까?” 기자는 속으로 지리산,태백산,한라산.계룡산이 아닐까 싶었다. “저는 소리를 만들면서 가슴이 답답할때는 고향인 광천의 읍내 겟것장터를 자주 찾습니다. 싱싱한 겟것이랑,온갖 곡식,채소를 옹기종기 내놓고 파는 장바닥 아낙내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흥얼흥얼하고 다니다 보면 막혔던 가슴이 풀리면서 ‘소리’가 다듬어지거든요” 그래서 “파 한 단 사세요!”가 “희망 한 단 사세요”가 된 것일까! “저에 아버지는 장고를 잘 하셨어요.마을에서 잔치가 벌어지면 아버님은 신명나게 장고를 치셨거든요.” 아버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오늘(22일)은 국악분야 살펴볼텐데요.장사익의 5번째 앨범 사람이 그리워서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인생을 노래한 아름다운 시에 곡을 붙인 6곡과 봄날은 간다 등 대중가요 3곡을 장사익 특유의 독특한 음색으로 들려줍니다. 이제 서점가 가보시죠. 교양과학분야에서는 상대성 이론이 1위에 올랐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늘어나거나 줄어든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그림과 도표를 곁들인 해설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책입니다. 어린시절 웅변으로 다져진 목소리는 점차 우리의 “소리”에 자석처럼 끌려 인생의 중반을 훌쩍 넘긴 40세 초반, 태평소로 각종 농악경연대회를 휩쓸며 음악계에 입문하기에 이른다. 60~70년대 한국음악이 전성기를 맞으며 대중 속으로 파고들 무렵, 정치적 억압으로 80년대 민중가요로 대표되던 시기를 지나 장사익은 우리의 소리와 신생한 대중음악을 믹스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게 된다. 93년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대중음악의 神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에서 태평소를 불었던 그는, 이후 해외 오케스트라 협연과 기타, 피아노 등, 대중음악과의 조우를 시험해 해외에 우리의 것을 알리는데 크게 공헌했으며 그의 심오한 시적 가사와 곡을 하듯 토해내는 독특한 창법이 현지 교민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현지인에게는 한국의 투박하고 한을 품은 듯 애절한 느낌의 음악적 감성 또한 그네들의 정서에 어필하기에 충분했다. 40세 초반부터 예순을 바라보는 현재까지 총 5집을 발표하면서 그는 삶과, 죽음, 자연을 위주로 곡을 썼다. 주로 詩에서 곡을 따온다는 그는 제목부터 요즘 대중음악과 다른 느낌이다. 가장 힘이 느껴지는 음반으로 1집을 꼽은 그는 “가장 파워풀하고 객기가 들어있는 음악.”이라고 평할 만큼 삶과 죽음, 그리고 자연을 힘 있게 불렀다. 특히 상여가 나가는 만가(상여소리)를 즉흥적으로 표현한 “하늘 가는길”은 장장 10여분에 걸쳐 죽음에 대한 정서를 토했다. 그의 노래를 이처럼 “토 한다”라고 하는 것은 그의 열정이 깊이가 너무나 깊어 그저 “노래했다”라고 하기엔 한 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상가 집에서 곡을 하는 사람은 설움에 온몸을 내던져 울지요, 그것은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가 분출 되면서 결국엔 후련해지는 것입니다.”장사익의 소리에 대한 견해다. 이 같은 설움이 곧 후련해짐으로 이어지는 것, 즉 살풀이나, 씻김 굿, 고풀이처럼 그의 소리는 우리네가 반만년동안 한 맺힌 응어리를 풀어내고자 그토록 토해내려 했던 것이다. 그의 음악적 사상을 이해하려면 이 같은 한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뜻인 것이다. 이는 그의 팬 층이 기성세대위주인 이유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은 제 음악을 이해하지 못해요, 대중음악이 너무 사랑에만 치우쳐서 저 같은 삶, 죽음, 자연은 그네들 정서에 맞지 않죠.”자조 섞인 그의 말이 이어졌다. 한편, 음악은 어디까지나 오디오이지 비디오가 아니라며 요즘 눈요기 거리의 립싱크 대중가수를 질타하기도 했다. 태평소로 국악마당에 , 늦깍기 소리꾼으로! “선생님은 1980년 서른 초반에 데뷔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녀유.94년 늦가을,제가 46살때죠.하하하..군을 제대하고 카센터,보험회사 직원 등 전전했시유.1980년에는 제가 새납 태평소를 들고 국악판에 연주자로 처음 끼어든거죠.입문이지 데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94년이라고 봐야 돼유.” 그는 한때 농악판 뒷풀이 “판막음”으로 이름을 떨쳤던 재야 소리꾼이기도 했다.판막이는 최고의 소리꾼 몫이다.판의 대미를 장식하고 무대를 마치는 게 “판막이”다. 그는 “정말 자기가 꼭 하고 싶은 것을 ‘꿈’으로 하고 그 꿈을 접지말고 일념으로 나아가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태평소가 그리웠던 그는 “정말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자”는 심정으로 무작정 뛰쳐나와 서울의 학원가에서 태평소를 불기 시작했다. 그렇게 입문한 소리꾼이 오늘날 한국음악을 대표하는 거물이 될 수 있었을까. “사람은 꿈이 있어야 되요, 꿈을 꼭 가꿔야 합니다.어떤 인기나 명예에 편승하면 안됩니다” “장 선생님의 음악세계에 대하여 팬들은 ‘장르‘에 대해 해석이 분분합니다.” “저는 그저 제 한을 노래합니다. 그것을 듣는 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게 들리겠지요,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듣는 이의 몫인 겁니다.” 며 퓨전자체도 하나의 장르임을 역설하였다. “선생님의 창법은 워낰 독특해 후진들이 뒤를 잇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후진양성이요?, 소리 내는 법은 가르칠 수 있지만, 그게 어디 되겠습니까. 그게 한국의 소리가 갖는 ... 자기 삶에서 스스로 우러나와죠.” 한국인의 정서를, 한을 인위적으로 가르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깨우쳐 주기를 바랬다. 뒤를 이어줄 후계자도 스스로 한을 느끼고 경험하기를 바라는 듯. 부모님 살아생전에 자신의 하늘을 덮어주던 그 보호막이 사라지던 날, 그 자신이 도리어 보호막이 되면서 좀 더 하늘과 맞닿아 간다는 그는, 그의 앨범에서도 알 수 있듯이 1집부터 5집 사이의 정서는 점점 하늘과 맞닿아가는 느낌이 든다. 5집은 1집보다 더욱 성숙한 느낌의 인생관을 담았다는 평이 실감이 났다.제5집 이후의 계획을 물었다.“삶, 죽음, 자연을 혼백으로 토하는 한국인의 숨결소리를 미국에 가서 낼려고 합니다. 25명의 스텝진이 함께하는 저에 단독무대죠. 제가 독일공연에서 교포청중들이 ’스폰지‘였다는 감동무대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교포들이 ’한국의 소리‘에 얼마나 목말라하는가 그 현장을 봤거든요. 물론 미국시민들에게도 우리 한국의 소리에 대해 그 진면목을 보여줄 계획입니다.“ 미주 한국화보 제공
2007-01-24 변하는 강남
학술원이 조사 발표한 서울의 행복 지수가 세계 10개 대도시 중 최하위로 조사돼 서울시민들의 기분이 매우 좋지 않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이 1등에, 미국의 뉴욕이 3등을 차지 했다. 아시아 국가 중 베이징과 동경이 서울보다 좋은 점수를 받았다. 서울의 생활 환경이 다른 나라의 대도시와 비교해 좋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엔 부족점이 많다. 지난 반세기 6.25 전쟁의 참화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고 대 도시의 형태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좋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여러 카데고리로 조사 됐는데 특히 한국인의 장점으로 여겨온 공동생활과 밤거리 치안조차 낮은 점수를 받아 상당히 실망하고 있다. 공동생활이란 한국 국민이 가장 강점으로 소중히 생각하던 각종 인연사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혈연, 가연, 지연, 학연, 직장연 등 이렇게 저렇게 얽히고 설킨 끈끈한 인연들과 情을 통틀어 공동생활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밤거리 치안은 말 그대로 마음 놓고 밤거리를 다닐 수 있는 안전한 생활 환경을 의미 한다. 흔히 미국에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큰 불만 가운데 공통점은 이구동성으로 밤에 마음 놓고 거리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처럼 밤 문화를 즐기고 싶은데 밤에는 위험하니 나가지 말라는 주위 사람들의 말뿐이다.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이 시민이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도록 치안 하나도 제대로 유지 못하느냐는 조롱도 서슴지 않았다. 여행자들의 마음속엔 한국의 안전한 치안 상태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말들도 자신 있게 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 하면 한국 사회가 지난 수십년 동안 놀라운 발전은 이룩했지만 국민들의 삶의 질과는 동떨어진 亂 개발 팽창만 했기 때문에 치안에도 심각한 문제점이 들어 나고 있다. 지난 2년여 동안 한국을 방문하지 않은 재외 동포들이 지금 서울을 방문 한다면 과거에 보았던 서울의 거리와 익숙지 않은 매우 다른 것을 발견할 것이다. 특히 서울의 번화가를 다닐 경우에. 거리마다, 골목마다 이상한 가판이 눈에 거슬리는 색깔로 흔하게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부분 24시간 남성전용 사우나 또는 안마 선전 간판이다. 밤이 약간 어두워지면 깍두기 같은 머리의 청년들이 지나 가는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접근한다. 거리에서 사우나나 안마를 선전 하지만 속내는 성 매매를 유도 하는 것이다. 지난 2004년 9월 정부는 성 매매 금지법을 통과 시킨 후 대대적인 집창촌 폐쇄 작업에 착수 했다. 당시 한국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성 매매를 근절 시킨다는 큰 뜻으로 시작 되었지만 그 업에 종사하는 직업 여성들에 대한 취업과 교육 등 세심한 대책 준비는 상당히 미미하다는 큰 비판이 있었다. 또한 집창촌의 붕괴로 말미암아 관련 직업 여성들이 도심으로 진출할 것이라는 우려도 매우 컸다. 한 사회 단체는 직업여성의 30%는 해외로 진출 했다는 통계치를 발표했다. 작년 미국 언론에 집중 조명을 받았던 원정 성 매매도 한국의 성 매매 법 단속으로 직업 여성을 해외로 내몰게 되면서 파생된 일이다. 결국 그런 우려가 본국에서도 법 시행에 들어 가면서부터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요즘 거리의 임대 광고가 조금 있으면 안마 시술소로 변한다. 사우나와 안마가 있을 수 없는 번화한 도시의 중심가는 물론 일반 주택지역과 학교 주변까지 침투하여 이젠 한국이 안마 공화국으로 변하고 있다. 이젠 약국보다 안마가 더 많다고 시민들은 걱정한다. 한국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이라면 대부분 서울 강남을 꼽는다. 아파트도 가장 비싸고, 교육 학군도 제일 좋고,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고층 빌딩숲은 뉴욕의 월 스트리트처럼 가히 한국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강남 거리도 강남역, 루네샹스 호텔, 선능역, 삼성동 4거리를 중심으로 사우나와 안마가 성황이라고 본국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강남은 말죽거리 신화와 타워팰리스로 상징 되는 한국의 낯선 자화상에 안마 간판까지 가세하고 있다. 지난해 부동산 광풍의 진원지도 강남이었다. 현 정부의 강남 타도가 결국은 한국 전체의 부동산 값을 올려 놓았다는 말할 만큼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자 부러움의 대상으로서 강남은 때아닌 사우나와 안마의 거리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강준만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강남을 오늘 한국의 원동력으로 생각하면서 또한 재앙적인 측면도 강조 했다. 강남을 한국의 세수하지 않은 얼굴 또는 화장하지 않은 얼굴이라고 했다. 결국 강남은 어떻게 변화 되느냐에 따라 저주의 땅으로 아니면 축복의 땅으로 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강남이 사우나와 안마의 거리로 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 원리인 수요와 공급이 이루어 지기 때문이다. 즉 비싼 임대료를 내면서도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수입이 있다는 뜻이다. 강남 시민들은 미국 뉴욕의 맨하튼과 비교하고 싶어 한다. 강남은 맨하튼처럼 상업, 금융, 무역의 중심지로서 경제적 수도라 하기에 충분한 지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옛 강남 거주자들은 강남이 한국의 초고속 성장을 온몸으로 드라마틱하게 웅변하는 지역으로 변하기 전 조선 후기에 민중들이 주체적으로 경제와 문화를 역동적으로 끌어 올린 근대 사회의 장소였다는 역사를 망각했다고 아쉬워한다. 강남 거리의 퇴폐적인 변화는 이제 옛 강남의 흔적을 더욱 그립게 만들고 있다. (서울에서 dyk47@yahoo.com)
2007-01-11 새해를 보다 정갈하게 맞이하기.
새해를 보다 정갈하게 맞이하기. 대망의 정해년 새해가 밝아왔습니다. 황금돼지해라고 합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 올 한 해에는 부자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계획들 세우셨지요. 당연히 새해 소망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건강에 관한 것입니다. 운동, 금연, 금주, 다이어트에 관해서 한 해에는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만은 해 보련다 하고 작정하신 일을 꾸준히 실천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추천해 드립니다. 잡동사니 버리기 먼저 집안 청소를 시작 하십시요. 한 해가 시작되고 첫 번째 주입니다. 새것을 받아들이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헌 것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집안 구석구석 버려도 되는 물건을 과감히 치워 버리십시요. 몸과 마음을 비워서 건강한 몸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1월을 맞이 하십시요. 캐런 킹스턴 의 <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몇 년 전 사업이 슬럼프에 빠져서 당신에게 상담을 예약했습니다. 풍수를 통해 사업의 전환점을 모색할 수 있기를 희망했지만 나에게 '다락방을 청소하라'고 말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 후, 모든 일이 당신이 말한 것과 똑같이 되었습니다. 막혀있던 사업의 하수구가 뻥 뚫린 것처럼 말이죠. 마치 꿈을 이룬 것처럼,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 되었습니다." 생활 주변에 잡동사니가 쌓이고 있다면 분명 우리의 삶에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취직이 안 된다, 인간관계가 꼬인다, 돈줄이 막혔다…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면 지금 당장 주위를 둘러 보십시요. 집안 곳곳에 혹시 쓰지도 않는 물건들이 쌓이고 있지 않은지, 책을 통해 저자가 제시하는 문제의 해결책은 다름아닌 "잡동사니 청소"입니다. 정체된 에너지를 몰아내자 캐런 킹스턴은 쓰지도 않는 잡동사니에 먼지처럼 가라앉은 이 기분 나쁜 에너지가 바로 인간의 육체와 정신, 감정, 그리고 영혼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인생을 방해하는 요인이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나는 무려 13년에 걸친 체중과의 싸움에서 감정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살빼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생에서 한 치도 전진할 수 없는 것은 우리를 붙들고 있는 두려움과 예정된 존재로 나아가려는 우리의 길을 가로막는 모든 기억과 물건들 때문이다." - 오프라 윈프리 몸과 마음에 있는 찌꺼기를 비우는 절식 똑 같은 원리로 몸을 청소하는 일 또한 둔하고 정체된 에너지를 말끔히 몰아내고 보다 활기찬 기운을 불어넣어 새로운 에너지의 흐름을 원활하게 유도합니다. 알 수 없는 오류로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리셋 버튼을 눌러 컴퓨터를 껐다가 다시 시작하면 웬만한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래서 단식(斷食)을 '몸의 리셋(reset)버튼 누르기'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서른 살 때 광야에서 40일간 단식기도를 마친 뒤 공적인 삶을 시작했습니다. 절식은 우리가 가지고 태어났지만 잊고 지냈던, 자기 스스로 치료하는 능력을 회복하는 수단입니다. 잠들어있던 자율신경이 깨어납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민감하고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을 제외한 모든 불필요한 요소들을 버리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 동안 몸에 쌓였던 노폐물과 독소들이 몸에서 빠져나가게 됩니다. 1 주일의 단식은 피를 정화하고, 2 주일의 단식은 뼈를 정화하며, 3 주일의 단식은 마음을 정화한다. 변화의 시작! 영양 과잉과 불규칙한 식사로 헝클어진 식습관을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서는 절식만한 것이 없습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하는 1월입니다. 주변의 모든 잡동사니를 치우십시요. 몸안의 것도 깨끗이 청소해 버리십시요. 더욱 새로운 기분으로 한 해를 맞이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경희 한의원/ 타하라센터 정현모
2006-12-14 뿌리를 찾은 아버지들
할러데이 시즌 시작과 함께 제임스 김 가족의 비보가 미 전역에 애도의 물결을 타면서 한국에서도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글과 詩가 인테넷 매체에 실려 큰 관심을 끌었다. 극소수가 양키의 노예 라는 악플을 달기도 했지만 절대 다수의 네티즌은 한 재미동포가 사랑하는 부인과 아이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다는 가족愛에 애도와 존경을 표했다. 특히 젊은 가장들 사이에선 아련한 슬픔과 함께 잔잔한 감동까지 일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동포들은 T.V를 통해 제임스 김을 본적이 있었을 것이다. 필자도 지금 뚜렷한 기억은 없지만 간혹 채널을 돌리다 보면 신 전자 상품의 성능을 자세히 설명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그렇게 잘 생긴 얼굴이라고 말하기보다 중국의 유명한 무술배우 부르스 리를 닮은 듯한 인상이 호감을 갖게 하는 따듯한 느낌을 받았다.그의 실종 보도와 함께 사진이 공개 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놀랐으며, 제임스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지역 시민들은 더욱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傳해졌다. 이번 제임스의 죽음이 우리의 가슴을 여미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진정한 사랑이 어디에 있겠냐는 것이다. 또한 두 아이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구조 순간까지 사투의 끈을 놓지 않고 버틴 엄마도 그런 사랑을 받기에 너무나 부족하지 않았다. 한국에선 눈 속에 핀 사랑의 꽃처럼 그 부부를 이 시대의 아름다운 영웅이라 부르고 있으며, 이기적인 부부관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선 어린 자녀와 부인이 차 속에서 며칠 동안 추위에 떨며, 굶고 있는데 아버지로서 구조를 마냥 기다린다는 것도 힘든 일이 아니겠느냐는 말도 하고 있다. 그 동안 아버지의 향기가 이 사회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가족 중에서 가장 왕따 당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가족들의 시선이 한곳에서 멈춘다고 한다. 그 동안 아버지는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고독한 존재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저 엄격해야 권위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한국의 아버지들. 그것이 가문의 영광인양 자신에게는 물론 아이들에게 까지도 웃음을 보이면 弱해진다고 생각했던 답답한 한국의 아버지들. 가족에 대한 사랑은 누구도 들을 수 없이 작은 소리로 말해야 되는 것으로 생각한 꽉 막힌 한국의 아버지들. 제임스 김의 아버지는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지고 있다. 항공기 부품을 외국에 수출하면서 대단한 富를 축적했지만 자식에게는 상당히 엄격했다고 한다. 한국의 아버지들은 묵묵히 이런 정신에서 자식을 키웠던 것이다. 몸은 미국에서 컸지만 그런 한국 아버지의 정신 속에서 자란 아들이었기에 책임감이 더 강했고, 그래서 그 만큼 오래 동안 버틴 것이 아니겠는가. 제임스는 구조대를 못 만나면 죽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극한 상황에서 구조대를 직접 찾아 나서기 위해 자신을 던진 것이다. 외출복 정도의 옷과 등산화도 신지 않은 채 10마일이 넘는 급 경사 길과 험준한 산길을 초 인간적으로 걸었다는 자체가 그의 진한 한국적 가족애가 아니면 가능 했을까? 제임스 김의 죽음이 사실로 확인 되면서 한국에서는 잊어진 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일고 있다. 그들은 동포 2세지만 제임스 김의 죽음을 통해 그 동안 망각된 자신들의 뿌리를 되찾았고,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된 것이다. 한국의 아버지들의 뿌리를 가장 뚜렸하게 보여준 한 시인의 “아버지의 마음”에 나오는 실화를 소개한다. 이 사건은 2-3년 전 여름, 지리산 계곡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갑자가 내린 폭우로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계곡물에 휩쓸려 버렸습니다. 아이를 부둥켜 안고 필사적으로 헤엄을 치던 아버지는 안타깝게도 힘이 모두 빠져 버렸습니다. 순간 아버지는 다리를 쭉 뻗어 물의 깊이를 재보니 자신의 키보다는 깊었지만, 두 팔을 편다면 두 손은 물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가 헤엄칠 기력이 다한 아버지는 마지막 힘을 모아 아들만 숨 쉴 수 있는 물 바깥으로 내어 놓고, 아들을 들고 있는 자신은 물속에서 서서히 죽어 갔습니다. 계곡물이 거세게 아버지와 아들에게 몰려 왔지만 뿌리 깊은 나무처럼 물속에서 죽어 가는 아버지는 죽어서도 아들을 손위에 얹어 놓은 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구조대가 도착하자 다행히 아들은 살아 있었지만 아버지는 팔을 위로 굳게 뻗은 자세로 물속에서 죽어 있었습니다. 제임스 김이 구조대를 찾아나선 것도 물속에서 천천히 숨지면서 아들을 높이 뻗쳐 든 아버지와 똑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서울에서 dyk47@yahoo.com)
2006-11-30 “…껄,…껄,…껄”
지난주 추수감사절 예배를 보았다. 추수감사절이라면 미국의 대표적인 명절인데 한국 교회에서 똑같은 예배를 본다는 것에 다소 의아했지만 장소가 틀린다고 해도 감사의 특별한 뜻은 같을 것이다. 일년 중 사람에 따라 특별히 좋아하는 절기가 있다. 필자도 학생 때는 크리스마스가 제일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 때 교회에 나가진 않았지만 친구들과 같이 밤늦도록 이곳 저곳을 쏘다니며 들떠 있던 분위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누구로부터 선물을 받는 기쁨이, 주는 것보다 더 좋았다. 그러나 붙들 수 없는 세월을 보내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런 어수선한 계절로부터 관심이 후퇴 하고 자연스럽게 지나온 세월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뒤돌아 보면 지난 세월에 불만도 많지만 반대로 이만큼 주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있었기에 가능 했던 것이다. 감사라는 단어 “유카리스티아”는 은혜가 많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를 의미한다. 즉 감사하는 자가 은혜를 많이 받고, 은혜를 많이 받는 자가 성공한다는 목사님의 설교가 기억 난다. 탈무드를 보면 “참된 知者는 모든 사람에게 배우는 사람이다. 참된 强者는 자신을 제어 하는 사람이다. 참된 富者는 가진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이번 추수 감사절을 한국에서 보내면서 350년 전 미국 땅을 처음 밟은 청교도들이 적고 힘든 첫 수확이었지만 하나님과 땅에 감사했던 그 정신이 아직도 미 국민들 사이에서 퇴색되지 않고 더욱 견고히 된 전통으로 내려 오는 것에 존경을 표한다. 미주대륙은 크게 남과 북으로 나누어 진다. 비슷한 시기에 북에 세워진 미국은 감사의 정신으로 인해 세계 최대 강대국이 되었으나, 남으로 간 사람들은 감사 보다 탐심이 커서 오늘날 여러 나라로 찢어져 가난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두 대륙을 감사의 기준에서 보면 현실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30년 만에 칠면조 고기와 스터핑이 빠진 색다른 추수감사절 예배 후 거리에 나오니 마지막 한 달이 남았다는 것을 실감한다. 연말년시 대목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서울의 백화점들은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과 형형색색의 오나먼트로 치장한 소나무를 내걸었다. 추수 감사절이 끝나기가 무섭게 쇼핑몰에 등장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유니언스퀘어 거리와 다를 것이 없다. 추수 감사 절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 되돌려 머물게 한다. 인생을 아무리 성공적으로 산 사람도 죽기 전에는 3 가지 “…껄,…껄,…껄”을 후회한다고 한다. “그때 좀 더 참고 살 껄” “가족들과 좀 더 즐기고 살 껄” 그리고 “가졌을 때 좀 더 베풀고 살 껄”에 못다한 恨이 마음에 남는다고 한다. 나눔에 인색해서 감사 없이 간 허기진 삶을 빗댄 세상 말이다. 추수 감사절에 감사하는 마음은 각인각색일 것이다. 연령에 따라, 장소에 따라, 현재 환경에 따라.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오늘의 내가 있다는 존재에 감사해야 한다. 특별히 동토의 땅 북한에 태어나지 않은 것에 더욱 감사해야 할 것이다. 감사 절기를 맞이 하여 특별히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북한 청소년들이 영양실조 때문에 평균 신장이 150센티 미터 미만이라고 한다. 남쪽과 비교하면 거의 20센티 미터 또는 그 이상의 차이가 난다. 그 청소년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인권이 없고, 식량이 부족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것 외에. 필자는 비록 아파트 광풍과 빈부 차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해도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남쪽 땅에 태어 난 것에 감사 한다. 미국산 수입 소고기 검사대에서 발견된 아주 작은 한 조각의 뼈 때문에 곧 광우병이 한국인들 몸 속에 들어 간 듯 난리 법석을 치며 미국의 굴욕을 조롱 하는 듯한 승리감을 보도하는 여기자의 상기된 얼굴을 T.V 화면으로 보면서 그래도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자유롭게 비판을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만개한 한국에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또 한 해 마감을 눈 앞에 두고 항상 평상심을 잃지 않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지혜의 길을 일깨워 주는 도종환 시인의 詩 “마음의 등대 하나를 세우며”를 독자들과 나누며 해피 할러데이 시즌을 만나고 싶다. 마음의 등대 하나 세우며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교만하지 않으면서도 당당한 삶, 비굴하지 않으면서도 겸손한 삶 역경에 닥쳤을 때든, 그것을 극복했을 때든 늘 평상심으로 살아가는 삶, 유연하되 원칙을 잃지 않는 삶 어려울 때마다 근본으로 돌아가 거기서 다시 시작하는 삶 그렇게 살다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시민기자 김동열 (dyk47@yahoo.com)
2006-11-17 못 알아 듣기
못 알아 듣기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이의 차이에 대해 적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다 주장하는 하나가 전부라 고집하며 귀를 막고 있는 것이 愚者의 모습이라면, 모르고 있는 것에 대해 알기를 원하여 자세를 낮추는 이를 賢 者라 말합니다. 인생 소풍 길은 사람과의 관계로 형성되고, 그 사이에는 대화가 존재합니 다. 때로는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상식이나 관념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들어보 지 못한 것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럴 때 다양한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겸허하게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의 생각 이나 사고에 맞지 않다며 귀를 닫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자세가 당 장에 어떠한 결과를 나타낼 수도 있겠지만, 인생길 살아가며 길게- 힘들게 나타날 것임을 짧지 않은 인생 살아오며 얻은 경험으로 느껴집니다. 많은 대화를 여러 사람과 하면서 안타깝다 하는 생각 들 때가 있습니다. 사회적, 지식적 수준으로는 전혀 못 알아들을 것 같지 않음에도 그러한 반응 을 보이는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의 공통됨은 자아라 이름하는 고집 에 잡혀 귀 덮기를 즐겨 합니다. 그럴 때 짧지 않은 인생길 살아오며 겪었 던 지난 날을 생각하게 되며, 얼마가 남았을 지 모를 그들의 인생길 그림 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못 알아들어도 될 내용이라면 귀를 닫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하는 생각을 하며... 휴스턴에서 거주하시는 권용운의 세상사는 이야기 中에서
2006-11-13 돈 폭탄이 떨어진다
서울과 인근 경기도에 아파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갑작히 떨어진 돈 폭탄에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속된 말로 어떻게 표정을 관리해야 할지, 이웃에 미움을 받지 않을지 하여튼 즐겁기만 하다. 그래서 강남 주민들로부터 노대통령이 한번 더 하면 좋겠다는 말도 나온다고 한다. 돈 폭탄이 그들만의 기쁨이고 그들만의 잔치 일까. 반면에 자기집을 마련해 보겠다고 이것 저것 아끼며 한, 두푼을 모은 서민들은 이런 불공정한 나라에 태어난 자체를 절망 속에 원망하고 있다. 특히 서민들이 옹기종기 몰려 살던 땅에도 부동산 개발 붐이 불어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슬픈 이야기가 감동을 받고 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1억(10만 달러 이상)이상 집값이 올랐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난 한달 동안 부동산 광풍이 지난 후 5억원(50만 달러 이상)을 벌었다는 사람들도 생겼다. 이번 부동산 광풍으로 백만 장자가 무더기로 양산 됐다. 필자도 거주하는 동네 복덕방을 들려보니 1백 퍼센트 신문보도는 아니지만 작년 이맘때 10억이던 집이 지금은 14억 이상을 호가하고 있다. 강남 일부 지역에선 10억짜리 아파트가 20억으로 급등 했다는 보도도 있다.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동산 광풍은 북한의 핵실험하고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심각하고 전국민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毒을 품고 있다. 부동산과 관련해 한국 국민들은 노무현 정권의 정책 부재와 무능을 비난하고 있지만 필자에게 비쳐진 국민 모두가 투기자처럼 보였다. 한국에선 신축 아파트를 사는 방법부터 철저하게 돈 있는 사람만이 살 수 있는 시스템이다. 대부분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분양 자격자들 중에서도 최고의 입찰가를 써낸 사람들에게 우선 순위가 주워지기 때문에 아무리 집을 짓고 또 지어도 경쟁력이 약한 일반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인 셈이다. 이런 구조적인 모순 때문에 결국 아파트 분양 추첨권을 받으면 로토에 당선된 것과 다름없다. 입주 후 몇 해만 지나 팔면 그 동안에 열심히 일한 근로자가 저축한 돈보다 몇 십배 또는 몇 백배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 누가 꼭뒤 새벽부터 일어나 상사의 잔소리 들어가면서 직장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그러니 일하기 싫고 돈만 벌고 싶은 국민 전체가 아파트 투기에 뛰어 드는 것이다. 아파트나 집이 휴식과 안락을 제공하는 주거의 본뜻으로 철저히 재인식 되지 않는 한 인간의 속성상 한국내 아파트 투기는 영원히 근절 되기 힘들지도 모른다. 이미 투기용 아파트 10채 이상 가진 사람도 1만5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한국에서 사업이나 가게를 하려고 해도 가장 힘든 큰 이유가 바로 높은 땅값에 보증금과 임대료 때문이다. 좋은 지역에서 웬만한 가계의 보증금은 1억(10만 달러)이 넘고 임대료는 대부분 1천만(1만 달러)원 이상이다. 그러니 보통 커피 한잔에 3천(3 달러이상)이상 받고, 호텔에선 1만5천원(15 달러이상) 이상도 받는다. 부동산 투기 병폐는 그야말로 망국병으로 국민 모두에게 삶의 의욕과 정신을 황폐화 시키고, 빈부의 양극화 현상은 사회적 혼란을 약기 시킬 수 있는 시한 폭탄에 비유되고 있다. 이런 위기를 대처하는 정부가 국민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집권 초기부터 경제문제를 정치적인 이념으로 풀려는데 있었다. 부동산 정책은 어느 나라에서나 국민의 기본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가장 힘든 정책중의 하나이며 시기와 지역에 따라 그 정답이 각각 다른 것도 특징이다. 그래서 선진국은 정부의 규제보다는 시장경제에 맡기고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정부는 서울 강남을 수구꼴통 보수세력으로 포장시키고 때려잡기 위해서 나라전체를 들 수셔 놓은 것이다. 그래서 이명박 전시장의 말처럼 서투른 사냥꾼이 산돼지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산 전체를 파헤쳤다는 말이 시민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 서울의 강남은 뉴욕의 맨하튼과 비교 될 수 있다. 맨하튼 아파트 값은 한국의 강남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비싸다. 그곳은 대부분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만이 사는 곳으로 발전 시켰다. 미국사람들은 맨하튼이 볼거리를 제공하는 부유촌으로 생각하고 적대감도 거의 없다. 현정부가 강남을 머리에 뿔난 사람들의 소굴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그래서 강남에선 아파트도 새로이 짓기 힘들게 만들고, 강남사람 모두를 부도덕한 부동산 투기꾼으로 몰아 골탕먹일 부동산 정책을 펴니 성공 할 수 없다. 강남을 한국 富의 상징으로 그 가치를 잘 유지시켜 자연스럽게 뉴욕의 맨하튼처럼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 시켰다면 지금 같은 혼란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할리우드처럼 한국의 명소로 키워 그 혜택이 국민 모두에게 돌아 가게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현정권은 그런 기득권층의 꼴을 눈 뜨고 못 보는 것이다. 반드시 최고를 보통으로 끌어 내려야 직성이 풀린다. 결국 한국의 부동산이 이처럼 혼란에 빠진 이유 중에 하나는 자본주의 국가를 좌파적인 가치관에서 억지 평준화로 밀어 부쳐 심각한 부작용이 나온 것이다. 오늘의 한국은 이념을 떠나서 가진 자, 못 가진 자 국민모두가 정신적 투기꾼인데 서로 책임을 전가 하려 한다. 투기자들이 지금 꿀꺽 삼킨 아편 같이 달콤한 불로소득의 부메랑은 언젠가 내 집 조차 마련하지 못한 서민들에게까지 그 고통의 값을 요구 할 것이다. (dyk47@yahoo.com)
2006-11-01 어쩔 수 없는 남한
이번 북한의 핵실험을 지켜보면서 남과 북의 대칭적인 자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말은 남과 북이 구사하는 전법이 너무나 대조적이라는 뜻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북한의 핵실험을 향한 남쪽의 기본 정책은 “최소한 전쟁은 막아야 겠다”는 매우 절발한 입장인데 비해 북한은 “전쟁도 불사한다”면서 국제사회의 제재를 온몸으로 대항하는 또 다른 절박한 상황인 것이다. 남과 북 양쪽이 모두 절박한데 남은 부자가 몸조심하는 그런 자세인 반면 북은 가진 것도, 숨길 것도 없으니 이판사판 우선 질러 보자는 자세이다. 가진 것이 많은 남한은 어떤 양보를 하더라도 어렵게 이루어 놓은 경제를 절단 낼 수 없기 에, 유엔의 제재도 무시하는 북한의 공갈에 그저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거주지가 해외인 대부분 동포들은 현 정부의 대북자세가 너무나 저자세이고 퍼주기에 급급하여 북한에 나쁜 버릇만 키웠다고 강경하게 비난하고 있다. 야당도 같은 주장이다. 물론 이 정부가 그렇게 까지 포용했기에 북한과의 전쟁을 예방할 수 있었는지는 후일 역사에 밝혀지겠지만 지금으로선 볼썽사나운 것만은 사실이다. 북한의 핵실험 전 미국의 경고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배고픈 북한 동포들에게 식량이나 비료를 보내 주자는 지원에 반대하는 한국 국민이 많지 않았다. 뒤돌아보면 북한은 그런 남쪽의 인도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핵무기에 대한 광신적인 욕망을 버릴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 북한은 식량과 비료도 필요하지만 더 원하는 것이 바로 달러이다. 특히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은 가장 확실한 달러 공급원인 셈이다. 미국은 금융제재이후 북한이 그토록 빨리 허술하게 졸도 상태에 빠질 줄은 몰랐다고 한다.마카오은행에 동결된 수천만 달러 때문에 6자회담에 들어오지 않겠다는 주장이 더욱 북한의 절박한 사정을 폭로한 결과로 작용돼 북한에 대한 경제적 고삐를 더욱 조이도록 만들고 있다. 왜 북한이 그 돈에 그토록 안달인 것일까. 그 돈의 용도는 북한 집권층의 통치자금과 어떤 연관이 되어 있다는 의심마저 받고 있다. 그런데 이번 U. N의 북한 제재안 가운데 사치품 금수 조항이 포함되면서 그동안 루머가 사실로 증명돼 한국 국민들을 또다시 실망시켰다. 대북 제재안이라면 핵물질 판매 또는 이전을 금지하는 무기관련 내용인 것으로 짐작 했는데 이번 안보리가 합의한 결의안에는 사치품 금수 같은 묘책이 끼어 있었다. 해마다 식량 원조를 받아도 주민을 모두 먹여 살리기 힘든 북한에 대해 때 아닌 사치품 금수라니. 북한은 그동안 주민은 먹지 못해 죽어 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값비싼 고급와인, 벤츠자동차, 롤렉스시계, 캐비아 등 사치품목들을 사들였다. 사치품이 정권유지에 필수품이고 정권의 충성도를 이끌어 내는데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의 관료사회 이면에는 뇌물이 대단히 성행한다. 그 이유는 사유재산이 허용되지 않고 관료들이 전권을 행사하기에 뇌물이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특히 고위층에서 하사하는 고급 사치품일 경우에는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며 충성의 촉매제였다. 그런 사치품이 차단되면 북한의 통치 구조에 상당한 타격을 가할 것으로 예상 된다. 물론 중국을 통해서 조달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겠지만 북한 지도층의 치부가 철저히 공개된 다.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을 지능적이면서 교활하게 응징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에 하나인 북한의 지도자가 사치품만 좋아하는 그런 속물로 분류시켜 톡톡히 선전효과를 보고 있다. 북한은 지난 90년대 고통의 행진중 어린아이와 임산부를 포함한 수백만이 기아로 목숨을 잃었다고 유엔 식량구조기관은 보도했다. 북한의 배고픈 어린아이들이 헐벗은 채로 빈 밥그릇을 들고, 튀어 나온 눈에 병든 모습이 화면에 비쳐질 때 얼마나 많은 세계인들이 그들의 고통을 함께 아파했고 구호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던가. 특히 같은 동족인 남쪽의 사람들은 더욱 안타까워했다. 그런 남과 북의 아픔을 이젠 나누기도 힘들어 졌다. 북한 핵실험이 남과 북의 숨통을 거의 끊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실험이후 한국 국민의 무반응에 세계가 놀랐다. 핵실험이라는 가공할 무기를 생산하기 위한 실험을 했는데도 그날 밤 향락산업은 여전히 성황이고 국민들은 설마 우리를 쏘겠냐는 안일한 생각도 여전했다. 냄비 같은 국민성도 문제지만 국민들은 안보에 대한 불감증에 걸려 이제는 북한이 언제 핵실험을 했는지도 곧 잊게 될 것이다. 필자가 한국에서 씁쓸하게 느낀 점은 북한이 핵실험을 했어도 북한이라는 지정학적 위험 부담을 어쩔 수 없이 안고 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국민들의 체념이다.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북한에서 발생한 수많은 문제점을 남한이 혼자 협조할 수 없다는 현실과 그래도 같은 동족인데 국제사회의 제재 앞에 놓여 있는 절박한 상태를 수수방관만도 할 수 없다는 논리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위대한 공화국”이라고 평양거리에서 외쳐대는 북한은 이번 핵실험을 통해 국제사회내 위상이 얼마나 신장 될지 알 수 없지만 당장 경제적인 압박과 고통을 크게 받게 될 것 같다. 또다시 주민들은 굶주림 대열 속에 빠져들 것이고 지도층은 여전히 아랑곳 하지 않고 사치품을 계속 구입할 것이다. 미국은 북한을 끝임 없이 악의 축으로 몰아 부칠 것이고, 부도덕한 국가로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이에 반발하여 북한이 또다시 제2차 핵실험을 감행하면 한국 국민의 인내심도 한계에 도달 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더라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생존권을 보장 받을 수 있다는 북한의 생각에 변화가 없는 한 남과 북은 경제적, 정치적 고통 속에서 헤어나기가 힘들어 보인다. 미래 일본도 핵무장을 하게 되면 설상가상 과거의 악연이 또다시 표출돼 새로운 형태의 긴장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물밑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머리위의 핵 족쇄가 스스로 풀지 않는 한 남쪽은 어쩔 수없이 격동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시민기자 김동열
2006-10-17 식지 않는 이민열기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이민박람회는 유례없는 호황으로 끝마쳤다. 이틀 동안 열린 회의장에는 유학박람회와 겹쳐 3만여 명이 넘게 온 것으로 기록됐다. 북한의 핵실험을 예견이나 한 듯 북새통속에 하루에 1만5천명 이상이 몰린 것이다. 이와 유사한 박람회가 지난 수년 동안 반복되었는데 아직도 그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이민문호가 줄어든 미국은 과거에 비해 그 인기가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장 선호하는 나라로 관심 받고 있다. 과거에 비해 미국이민이 힘들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눈길을 돌리지만 그곳으로 갈려는 사람들의 미래 최종 목적지도 역시 미국이다. 과거 남미에 간 사람들이 이민 보따리를 풀지 않고 미국으로 갈 기회만 기다렸다는 후담이 기억난다. 그러면 왜 그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을 떠 날려는 것일까. 가장 큰 주범은 스트레스와 자녀교육비 때문이다. 한국에서 가정주부들의 주화제로 아파트 시세와 아이들 교육문제를 빼놓으면 할 이야기가 없다고 한다. 그야말로 이 두 문제에 철저히 올인하는 셈이다. 그럼 한국적 스트레스는 어떤 것인가. 필자가 30년간 살아온 미국에서 느끼지 못한 매우 판이한 형태로 매사 남의 이목을 의식하고, 남과의 비교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한다. 어떤 이유에서 실업자가 되도 남들의 눈이 무서워 양복 입고, 넥타이를 매고 공원에 갔다는 현실이 모두를 두렵게 한다. 넥타이를 매지 않으면 무시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일용직 노동을 해도 넥타이를 매고 싶다고 한다. 남을 의식한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정체성이 약하다는 뜻이다. 정체성이 결핍되고 자신감이 상실된 사회는 결국 스트레스를 양산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한국사회가 초고속 변화의 태풍 속에 있다는 현실이다. 젊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고 위로부터는 조이는 샌드위치가 됐다. 자신이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어디에서 내려야 할지 판단이 순간적으로 멈추면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 지난 50여 년 동안 경제를 포함한 모든 면에서 너무나 빠른 변화를 했다. 다른 나라가 2-3백년에 걸쳐 해낸 것을 특별한 한국인은 지난 50년 동안 이룩한 것이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953년 67달러에서 2004년에는 1만 4천여 달러로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50년 동안 200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멀쩡한 정신상태가 오히려 이상한 일인지 모른다. 한국인은 이런 스트레스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뇌와 간질환은 세계선진국과 비교하여 불행하게도 최고의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 지친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만은 똑같은 비극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이것이 자녀교육에 극성을 부리는 가장 특이한 이유이다. 어느 부모가 자신의 고통을 대물림하고 싶겠는가. 결국 자녀가 취직을 할 만한 대학에 입학할 확신이 안서면 탈출구로 유학이나 이민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여유가 있은 중상층 이상은 조기교육이나 단독 유학을 결정 하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은 온 가족 이민이 최상의 방법으로 떠오른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들도 미래가 없는 회사에서 명퇴나 사오정(45세 정년퇴직)을 당할 불안 속에 지내기보다 새 땅에 가서 새롭게 시작해 보자는 이민에 호감이 갈 수밖에 없다. 결국 스트레스와 자녀교육이 만들어낸 스트레스 공화국에서 탈출이라는 극단적인 처방이 바로 이민인 것이다. 본국 언론 뉴욕특파원이 보도한 한국 주부의 이야기가 잔잔한 심금을 울리고 있다. 한국의 중산층 주부가 담배만 피워대는 남편과 대학 졸업 후 친구들과 빈둥거리는 아들을 보다 못해 구직전선에 나선 것이다.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해 헤매던 중 한 인력소개소에서 L. A가정부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비행기를 탔다고 한다. 먹여주고 재워주기 때문에 월급은 고스란히 저축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편, 자식과 헤어져 사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기자에게 “굶어 죽지 않으려면 뭐라도 해야잖아요.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다 구하다 안 돼 결국 여기까지 왔다“며 가시 돋친 말을 했다고 한다. 현재 그가 살고 있는 L. A근교에는 그와 같이 온 사람들이 꽤있다는 소문도 전했다. 그 주부의 남편은 중소기업의 이사까지 재직했지만 명예퇴직이후에 이것저것 해보았지만 모두 실패하고 장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불안한 미래가 한국의 중산층을 이민의 길로 내몰고 있다. 미국 내 닭공장 이민은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오기를 간절히 원하는지를 보여 주는 슬픈 단면이다. 미국내 3D업종의 하나인 닭공장에서 시간당 6.5-8달러를 받으면서 기계처럼 일하는 한국 중산층 이야기가 한국에 크게 보도 되었다. 그 안에는 40-50대 전문인을 비롯하여 의사까지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중산층이 미국을 찾는 이유도 첫째가 자녀교육이고, 불안한 한국의 장래를 꼽고 있다. 국민소득 1만4천 달러에 OECD에 가입한 선진국 한국에서 아직도 뜨거운 이민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현실에 외국인들은 의아해 한다. 경제 강국으로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른 나라에서 이민을 가기위해 이민박람회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는 사실이 경이롭기만 한 것이다. 이민열기가 아직도 식지 않은 한국이 이와 같은 웃음거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우선 노동을 천대시 하고 허례허식에 찌든 유교적 체면문화에서 탈피하는 정신개혁이 가장 시급하다. 남 때문에 넥타이를 풀 수 없고, 남 때문에 분수에 넘치는 큰 차를 타야만 하는 체면문화가 깨질 때 한국인의 정신연령은 보다 성숙할 것이다. 한국에 사는 많은 외국은 한국처럼 재미있고 다이내믹한 나라를 찾기 힘들다고 평가 한다. 지하철 속에서 자기 집 안방처럼 남을 상관치 않고 마음 놓고 큰소리로 전화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절간처럼 고요하고 적막감이 넘치는 동경 지하철의 위축된 일본인의 예의와는 정말 대조적이다. 무질서해 보이지만 곧 터질 것 같은 생동감 넘치는 시민들의 활기가 어찌 50년 체증의 체면문화를 아직까지 혁파하지 못했는지 안타깝다. 며칠 전 한 결혼정보회사에서 조사한 위기상황시 남녀 선호배우자 조사 결과 여자의 39.8%는 영주권이나 시민권자등 해외기반, 연고가 있는 사람을 원했다고 한다. 북한의 핵실험 때문에 미국내 총각과 홀아비들의 주가가 뜨고 있다는 서울의 이야기가 농담만은 듣기엔 서울이 너무 뜨겁다. 서울관전 제9회 10월 16일 시민기자 김동열 (dyk47@yahoo.com)
2005-10-03 평통 지역협의회장 정에스라 변호사
호랑이로 소문난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정에스라 변호사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샌프란시스코지역 최연소 지역회장으로 임명되어 화제다. 그를 대해본 모든 이들은 그에게 붙여진 호랑이라는 별명이 걸맞지 않은가 한다. 왜냐하면 말에 부드러움과 친절함에 어느 누구에게도 고분고분한 태도에 비한다면, 호랑이가 아닌데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그는 본인의 업무와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칠흑 같은 어두운 밤에 자동차의 불 빗이 켜지듯 눈이 빛난다. 호랑이의 눈빛과도 같이 이겨야 한다는 일념을 갖고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그의 업무추진 스타일에서 나온, 그를 대변하는 닉네임인 호랑이가 최연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샌프란시스코지역 협의회장으로 임명되어 또 한번 다른 호랑이로서의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최초 외국이름 그는 서울 마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화여대부속 초등학교를 다닌 그는 그때의 기억으로 다른 초등학교에 비하여 교육방식이 특이 하였단다. 현재의 미국 방식과도 같은 성적에 의한 학년의 석차가 없었다고 한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공부하고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그 반의 학생들이 그대로 학년 진급을 해서 그런지 지금도 초등학교의 동창들의 인터넷으로 “모여” 하면 거의 모인다 싶어하는 모임이 있으면 서울도 마다하고 날아가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초등학교의 낭만을 지금까지 갖고 살아가는 아주 행복한, 늙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정에스라 그에 이름은 한국에서는 최초로 등록된 외국 이름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 당시 이름, 성명은 한글과 한문이 동시에 등록이 되어야 했던 시절에 에스라 라는 이름은 등록 창구에서부터 담당자의 손을 흔드는 광경을 연출해 냈단다. 어렵사리 동분서주한 부친 덕분에 지금 그의 이름을 가질 수 있었다. 그의 부친은 한국의 8번째의 물리학 박사 그의 부친은 한국의 8번째의 물리학 박사인 정광섭씨로 서울고등학교, 경기대, 중앙대, 카이스트 등을 두루 걸치신 분으로 한승수 전 주미대사가 부친의 특별한 제자로 기억한단다. 지금은 능통한 영어를 구사하는 한승수씨가 고2때 전학 와 힘든 상황에서 부친의 지도로 졸업할 때는 지금의 그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분이시다. 아마도 그의 부친이 요즘 유행하는 기러기 아빠의 원조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 당시에 기러기를 자초하고 아들일행을 미국에 보내면서 한국에서 홀로 생활하신 분이시다. 지금은 미국에 함께 살고 계시지만 일찍이 본인을 희생하면서 지금의 정에스라를 있게 만든 장본인이시다. 최연소 지역협의회장 그는 또 하나의 기록을 만들어 냈다. 최연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지역협의회 회장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이민 1.5세대인 그는 젊은 나이부터 한인사회에 많은 봉사활동을 해왔던 것으로 본다면 최연소라는 말에 이의를 달라고 하는 지역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평통위원을 5회에 걸쳐 지냈고 이번이 6선이며 평통간사와 부회장, 한인회부회장 등 한인관련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다양한 봉사활동경험을 축적해 왔던 것이다. 전직회장을 역임한 지인들은 한결같이 젊은 사람 특히 1.5세가 한인활동에 그렇게 열심히 해온 사람은 드물 것이라고 하면서, 한인단체에 젊은 세대가 들어와서 일하기가 힘든데 참 잘해왔다는 평이다. 그것이 결국은 양쪽을 잘 알기 때문에 조정능력이 탁월 하다는 평가를 얻어낸 것이다. 그가 1.5세대인 것이 2세대와 1세대의 중간인 .5가 이민 온 세대의 숫자로서도 맞아떨어지지만 그의 활동경력이 또한 그 숫자의 뒷바침을 하여주고 있다.또한 그의 언어구사 면에서도 1.5세대와 2세대를 묶는 영어권에서도 문제가 없고, 유창하고 겸손한 한국말은 1세를 사로잡는 데는 굉장한 포용력이 있다. 그 동안 평통은 1세들의 주무대인 것처럼 1.5세와 2세들은 임명이 되었다 해도 주위를 맴돌다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임기를 마치는 그런 상황에서 이번의 본국의 물갈이 정책과 교민들의 바라는 바가 이번 회기에서는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아마 시대에 반영해서라도 그시기가 언젠가는 와야 한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데는 그 동안 문제가 많았던 것 같다. 미국이민생활의 개척자이며 기초를 다진 1세들이 1.5세와 2세들을 항상 어린 아이처럼 느끼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미 주류사회에서 활동하는 그들에게 할 일을 부여 해주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아마 최초라는 부수적인 말이 따라 붙는 것은 그만큼 기대가 크고 바라는 바가 많음이라고 하겠다. 실질적인 차세대 요원의 활용 정에스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샌프란시스코지역협의회 회장은 앞으로 그들에게 할 일을 많이 줄 것이라고 말한다. 미 주류사회에 한국의 평화통일정책 등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홍보와 내년에 있을 차세대 컨퍼런스도 이쪽에서(샌프란시스코)개최되는 관계로 준비할 많은 일들이 주어질 것이라고 한다. 할 일이 주어진 그들은 전에 임명되어 맴돌다 가는 그런 위원들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위원들이 될 것이란다. 모든 공문들은 영문으로 번역되어 차세대위원들도 이해하기 쉽게 하여주고, 위원교육도 영어권강사를 초빙할 것이란다. 그 동안 주로 외부강사를 모셔와서 강의를 듣는 것으로 해왔지만 이번12기부터는 2~3명의 위원들을 지명하여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위원들의 자질 향상과 업무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며, 기존의 사업들은 계속해 가면서도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사업과 통일에 관하지 않은 것들은 자제 할 것 이란다. 이번 제12기 평통위원은 타인의 추천이 아닌 모두 자기추천을 통해 임명된 사람들로서 다른 때보다도 사명감들이 크다고 한다. 남의 손에 등이 밀려 임명된 것이 아니라 훨씬 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다는 정 에스라 회장의 말이다. 그 어느 때 보다 훌륭한 인사들로 구성 이번 제12기 샌프란시스코지역 평통위원 들은 우선자질과 능력면 에서도 그 어느 때 보다도 훌륭한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와 동포사회의 지도자들로 구성된 이번 위원들은 동포사회와 미 주류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홍보에 남다른 활동을 할 것이란다. 이번 회기부터는 소규모 그룹의 활동을 적극 활용하여, 적극적인 토론의 장을 유도할 것이라는 정회장은 많은 인원의 모임에서 대화의 장이 막히는 것을 소규모 그룹별로의 토론을 진행하여 결론을 모아 총체적인 결론을 얻는 토론의 장을 마련할 것이라는 그는 모든 위원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그런 회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역대이래 지역협의회장의 인선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는데 이번의 정에스라 회장의 임명에는 모두가 수긍하는 분위기다 그만큼 그의 겸손함, 추진력, 포용력등과 절반 가까이 포함된 신세대의 리더로서의 적임자라는 데에 모두가 환영하고, 미 전체에서 처음으로 실시하는 실험적인 케이스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평양방문과 통일 아카데미 개최 2006년 6월초 평양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정에스라 회장은 해외 동포가 21세기의 민족화합의 시대를 열어야 하는 핵심에 서있는 관계로, 북한을 이해하고 번영할 수 있게 돕는 사업을 해외에서 활동하는 평통이 앞장서야 한다는 일념을 갖고, 평양을 방문하여 해외 일반경제인들과의 경제교류 사업 등을 북측과 협의할 예정으로 북한방문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통일에 관련된 모든 토의와 수렴을 일반동포들에게도 확대할 예정으로 위원들이 아닌 일반동포들을 위한 통일 아카데미를 신설하여 여러 분야의 동포들로부터 의견을 수렴하여 건의 할 예정이란다. 산호세자선 합창단과 변호사활동 정에스라 회장은 산호세자선 합창단과 북가주 남성중창단을 4년 넘게 이끌어 가고 있다. 이합창단은 어두운 곳에 희망을 주고, 교포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으며 부인인 정혜란씨는 반주자로서 그 일조를 하고 있다. 본인이 하고 있는 변호사의 역할을 의사라면 가정의 (훼밀리 닥터)라고 말한다. 그가 주로 담당하는 사건은 상해사건이다. 법의 무지에서 오는 자녀구타인 사랑의 매가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우리동포들도 이제는 서구화되어 그런 문제는 별로 없고 스트레스 등, 여러 가지 문제에 의한 정신분열 등의 문제가 서서히 많아지는 추세 라고 한다. 부모와 자식과의 심층 있는 대화가 어느 선에서는 언어도 언어지만 생각하고 있는 자식들의 어딘가의 간지러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방치하고 이해해주지 못함에 2세들의 갈등이 마약이나 정신적인 문제에 영향을 주는 것이 지금의 제일 큰 문제라고 말한다. 한국식교육을 받은 부모세대가 미국식교육을 받은 자녀들을 어떻게 이끌어 가는 가에 따라서 자식교육의 성공을 판가름 할 수 있는 것 같다. 조국통일 이루는 날을 기다리며 미국이민 1세가 영구히 남을 수는 없지 않는가 1.5세가 그렇고 2세가 그렇다. 시대는 가고 있다. 시대에 부흥하는 이번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샌프란시스코지역 협의회에 물갈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닌 듯싶다. 앞으로의 시대가 어차피 이곳에서 태어나고, 젊은 사람들에게 갈 것이라면 그들에게 한국인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깊게 심어주기 위한 준비를 지금과 같이 시작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이다. 지금도 서서히 문은 열리고 있다. 사람이 왔다 갔다 한다. 이곳 평통도 내년에는 북한을 간단다. 별안간 철책이 무너져 홍수가 나듯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그런 혼동의 상황에 처하지 말고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을 최연소 지역회장인 정에스라 변호사가 이끄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샌프란시스코 지역협의회가 조국통일의 기관차가 되어 고군분투하길 빌고, 통일이 된 순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거대한 “함”에서 닻이 내리는 날을 정에스라 회장과 기대해본다. 정에스라 변호사 연락처: 4675 Stevens Creek Boulevard, #208 Santa Clara, CA 95051, USA jungesra@yahoo.com 전화: (408) 556-0300 팩스: (408) 556-0310 한국화보 정승덕 지사장
2005-05-11 핸디 낮추는 ‘멘탈골프’ 출간
골퍼 심리 훈련법 등 알기 쉽게 서술 티칭프로 임승준씨 ‘골프는 과학이다’ 그러나 심리전이다. 이 둘을 정복해야 진정한 골퍼가 된다. 골프는 단순한 기술적인 운동일까? 골프장에서 신고식을 하고 몇 차례 라운딩을 했던 골퍼라면 골프가 멘탈 게임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실제로 멘탈을 경기에 적용해 골프 실력을 향상시키고 핸디를 줄이는 방법은 골프 실력을 향상시키고 핸디를 줄이는 방법을 좀처럼 알기 어렵다. 서점에도 골프의 테크닉칼한 부분을 소개하는 책은 많지만 정신적인 면을 다룬 골프 책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책이 있다 해도 추상적이기만 하지 실제적으로 멘탈이 어떻케 골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은 드물다. 산호세에 거주하는 20여년 구력의 저자는 이점을 착안, 엔지니어 특유의 분석력을 발휘하여 골프의 멘탈 부분을 집중 연구해 이 책을 내놓았다. 멘탈을 환경인식, 게임인식, 자아인식이라는 세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필드에서 효과적으로 적용하여 핸디를 낮추게 하는 예리하고 과학적인 방법들을 소개한다. 싱글이 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했는데도 실력이 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을 갖은 골퍼라면 눈여겨볼 만 하다. 테크닉과 멘탈의 조합으로 골프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구체적이고 효율적이 방법을 제시하는 책. 골퍼라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의 필드 라운딩과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의 레인지 연습만으로 근육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멘탈 골프를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멘탈골프’를 한번쯤 습독해 볼만 하다. ‘멘탈골프’(정가 17달러)의 구입은 한국의 교보문고, 산호세의 서울 문고를 비롯하여 SFKorean.com이나 저자에게 연락하면 된다. 서울문고: (408)246-2300 저자: (408) 426-0361 임승준씨 임승준씨
2005-04-28 Shoplifter 어떻게 다루나?
Shoplifting 이란 상점에서 물건 가격을 지불하지 않고 훔치는 것을 보편적으로 말합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상품의 가치를 상점에서 영구적으로 빼앗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업주가 Shoplifter 붙잡아 경찰에 넘기려면 Shoplifter라고 간주하게 된 적당한 원인(probable cause)을 준비해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오해로 인해 무고한 사람을 Shoplifter로 몰아세우는 실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Shoplifter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때 이것을 반증하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Probable cause에 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다음과 같은 사항들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손님이 상점에 들어올 때 손에 어떤 물건도 들려있지 않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return하거나 상점에 있는 상품과 비교해 보려고 손님의 것을 가지고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님이 가지고 들어온 상품을 주머니에나 백에 넣는 것을 Shoplifting으로 오인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Shoplifting으로 단정하기 위하여 손님이 상점에 들어와서 특정상품으로 접근하여 고르는 과정을 지켜보았어야 합니다. 둘째, 손님이 상품을 숨기거나 몸에 지니고 떠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상품에서 가격표를 떼고 챙겨 넣거나, 먹어서 없애거나 모두 Shoplifting에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Fitting room에서 발생하는 Shoplifting을 막기 위해서는 손님이 Fitting room으로 갖고 들어가는 물품과 갖고 나오는 물품을 파악하여야 합니다. 만일 차이가 있더라고 혹시 Fitting room에 실수로 두고 나온 것이 없는지를 우선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 손님이 Shoplifting하고 있다는 심증이 있을 경우는 손님으로부터 눈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Shoplifter가 감시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숨긴 물품을 몰래 꺼내놓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Shoplifting 했다고 잡아놓았는데 몸에 지닌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면 상점을 무고죄로 걸어올 수 있습니다. 때로는 Shoplifter로 하여금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고의적으로 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됩니다. Shoplifter가 훔친 물건을 꺼내놓고 상점을 떠나도록 유도하는 것이지요. 넷째, 손님이 값을 치렀는지 안 치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손님이 일부는 값을 치르고 숨긴 물건은 값을 치르지 않고 가는 수가 있습니다. 이때 Cashier가 손님에게 숨기고 있는 물건에 대한 값을 치를 것인지 물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훔칠 의도가 없었다면 값을 치르던가 마음을 바꾸어 사지 않겠다고 하겠지만, 훔칠 의도가 있을 경우는 숨기고 있는 물건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것이고 나중에 Shoplifting의 명백한 의도가 손님에게 있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다섯째, 손님이 값을 치르고 다시 매장으로 돌아가는 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는 특정 상품의 값을 치른후 상품은 차에 쏟아두곤 상점에 다시 들어와서 기존 영수증을 이용하여 동일한 상품을 이미 값을 치른 듯 또 다시 들고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값을 치르고 매장에 다시 돌아가서 몇 가지 상품을 더 집어넣고 유유히 나가는 손님도 있습니다. 만일 발견되더라도 Cashier의 실수로 계산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할 요량이지요. 출입구에서 도난방지장치에 의하여 제지를 당하더라도, Cashier의 실수이거나 Deactivation의 문제라고 돌린다는 작전입니다. 따라서 값을 치른 손님의 거취에 관심을 기울여야합니다. 여섯째, Shoplifter를 상점 밖에서 제지하여야 합니다. 상점 안에서 Shoplifter를 잡아놓는 것은 법적으로 Shoplifting으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판례가 있습니다. 상점 밖에서 Shoplifter를 제지할 경우도 경험 많거나 훈련받은 고용인이 자신의 신분을 손님에게 정확히 밝히고 제지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도망가고 추격하거나 몸싸움이 있지 않도록 여러 명이 같이 손님을 상대하는 것도 요령입니다. 일곱째, 출입구에 설치된 도난 경보기가 경보를 울리면 손님을 Shoplifter라고 단정짓기 전에 경보가 울리게 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보가 잘못 울리는 경우의 대부분은 전파 잡음에 의한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휴대용 전화가 울리면서 간섭현상으로 경보가 울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금속 frame으로 된 출입문과 간섭에 의하여 경보가 울리기도 합니다. Cashier가 상품에 붙은 Tag을 떼어내는 것을 실수로 잊었거나, Deactivation에 문제가 있을 때도 같은 현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손님이 경보기를 통과 할 때 경보가 울리면 다음과 같은 순서를 추천합니다. (1) 손님에게 경보장치를 한 번 더 통과하도록 친절히 부탁합니다. 이때 손님이 거부할 경우 손님의 백을 강제로 조사할 법적 권한이 업주에게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2) 다시 통과하면서 같은 경보가 울리게 되면 손님은 두고 백만이 경보기를 통과하도록 합니다. 백이 경보를 울리게 한 것으로 판명되면 백 속에 Active Tag이 있다는 증거이며 손님의 자발적인 협조를 얻어 백에 있는 상품을 조사합니다. 손님 자신이 경보를 울리게 한다면 손님의 소지품 중 Active Tag이 붙어 있거나 (3) 만일 손님이 경보장치를 다시 통과 할 것을 거부하거나, 자발적으로 백을 보여줄 것을 거절하거나, 손님 자체가 경보룰 울리게 한다면 적절한 훈련과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경찰의 협조를 신속히 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덟째, 상점에서 모든 Shoplifter를 구속한다는 방침이 있지 않는 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문제는 안전에 관한 것입니다. 비록 Shoplifter를 처벌하지 못하고 보내는 한 이 있더라도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상점에서 Shoplifter에 관하여 관심과 조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대부분의 Shoplifter는 다른 상점으로 무대를 옮기기 마련이니까요. 이상 Shoplifter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상점의 규모가 충분히 커서 전문 요원을 고용하여 Shoplifting 문제를 다루는 경우는 다릅니다만, 대부분의 상점은 그런 여유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도난방지를 위한 기기들이 많이 저렴해졌고 전문 요원을 대신하여 효과적으로 Shoplifting을 막아나가는 것이 가능해 졌습니다. 미국에서 년 간 310억불이 넘는 상품이 도난 되고 있고 보통 소매상에서 총 매상의 2-5% 정도가 도난 맞고 있다는 현실을 보면서, 약간의 투자로 많은 상품을 Shoplifting으로부터 보호하고 특히 상점과 고용인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면 그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SIDEP-US, Inc 140 Moraga Way, Orinda, CA 94563 (510) 541-0400
2005-04-28 Shoplifter 어떻게 다루나?
Shoplifting 이란 상점에서 물건 가격을 지불하지 않고 훔치는 것을 보편적으로 말합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상품의 가치를 상점에서 영구적으로 빼앗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업주가 Shoplifter 붙잡아 경찰에 넘기려면 Shoplifter라고 간주하게 된 적당한 원인(probable cause)을 준비해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오해로 인해 무고한 사람을 Shoplifter로 몰아세우는 실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Shoplifter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때 이것을 반증하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Probable cause에 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다음과 같은 사항들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손님이 상점에 들어올 때 손에 어떤 물건도 들려있지 않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return하거나 상점에 있는 상품과 비교해 보려고 손님의 것을 가지고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님이 가지고 들어온 상품을 주머니에나 백에 넣는 것을 Shoplifting으로 오인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Shoplifting으로 단정하기 위하여 손님이 상점에 들어와서 특정상품으로 접근하여 고르는 과정을 지켜보았어야 합니다. 둘째, 손님이 상품을 숨기거나 몸에 지니고 떠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상품에서 가격표를 떼고 챙겨 넣거나, 먹어서 없애거나 모두 Shoplifting에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Fitting room에서 발생하는 Shoplifting을 막기 위해서는 손님이 Fitting room으로 갖고 들어가는 물품과 갖고 나오는 물품을 파악하여야 합니다. 만일 차이가 있더라고 혹시 Fitting room에 실수로 두고 나온 것이 없는지를 우선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 손님이 Shoplifting하고 있다는 심증이 있을 경우는 손님으로부터 눈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Shoplifter가 감시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숨긴 물품을 몰래 꺼내놓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Shoplifting 했다고 잡아놓았는데 몸에 지닌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면 상점을 무고죄로 걸어올 수 있습니다. 때로는 Shoplifter로 하여금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고의적으로 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됩니다. Shoplifter가 훔친 물건을 꺼내놓고 상점을 떠나도록 유도하는 것이지요. 넷째, 손님이 값을 치렀는지 안 치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손님이 일부는 값을 치르고 숨긴 물건은 값을 치르지 않고 가는 수가 있습니다. 이때 Cashier가 손님에게 숨기고 있는 물건에 대한 값을 치를 것인지 물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훔칠 의도가 없었다면 값을 치르던가 마음을 바꾸어 사지 않겠다고 하겠지만, 훔칠 의도가 있을 경우는 숨기고 있는 물건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것이고 나중에 Shoplifting의 명백한 의도가 손님에게 있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다섯째, 손님이 값을 치르고 다시 매장으로 돌아가는 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는 특정 상품의 값을 치른후 상품은 차에 쏟아두곤 상점에 다시 들어와서 기존 영수증을 이용하여 동일한 상품을 이미 값을 치른 듯 또 다시 들고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값을 치르고 매장에 다시 돌아가서 몇 가지 상품을 더 집어넣고 유유히 나가는 손님도 있습니다. 만일 발견되더라도 Cashier의 실수로 계산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할 요량이지요. 출입구에서 도난방지장치에 의하여 제지를 당하더라도, Cashier의 실수이거나 Deactivation의 문제라고 돌린다는 작전입니다. 따라서 값을 치른 손님의 거취에 관심을 기울여야합니다. 여섯째, Shoplifter를 상점 밖에서 제지하여야 합니다. 상점 안에서 Shoplifter를 잡아놓는 것은 법적으로 Shoplifting으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판례가 있습니다. 상점 밖에서 Shoplifter를 제지할 경우도 경험 많거나 훈련받은 고용인이 자신의 신분을 손님에게 정확히 밝히고 제지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도망가고 추격하거나 몸싸움이 있지 않도록 여러 명이 같이 손님을 상대하는 것도 요령입니다. 일곱째, 출입구에 설치된 도난 경보기가 경보를 울리면 손님을 Shoplifter라고 단정짓기 전에 경보가 울리게 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보가 잘못 울리는 경우의 대부분은 전파 잡음에 의한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휴대용 전화가 울리면서 간섭현상으로 경보가 울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금속 frame으로 된 출입문과 간섭에 의하여 경보가 울리기도 합니다. Cashier가 상품에 붙은 Tag을 떼어내는 것을 실수로 잊었거나, Deactivation에 문제가 있을 때도 같은 현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손님이 경보기를 통과 할 때 경보가 울리면 다음과 같은 순서를 추천합니다. (1) 손님에게 경보장치를 한 번 더 통과하도록 친절히 부탁합니다. 이때 손님이 거부할 경우 손님의 백을 강제로 조사할 법적 권한이 업주에게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2) 다시 통과하면서 같은 경보가 울리게 되면 손님은 두고 백만이 경보기를 통과하도록 합니다. 백이 경보를 울리게 한 것으로 판명되면 백 속에 Active Tag이 있다는 증거이며 손님의 자발적인 협조를 얻어 백에 있는 상품을 조사합니다. 손님 자신이 경보를 울리게 한다면 손님의 소지품 중 Active Tag이 붙어 있거나 (3) 만일 손님이 경보장치를 다시 통과 할 것을 거부하거나, 자발적으로 백을 보여줄 것을 거절하거나, 손님 자체가 경보룰 울리게 한다면 적절한 훈련과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경찰의 협조를 신속히 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덟째, 상점에서 모든 Shoplifter를 구속한다는 방침이 있지 않는 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문제는 안전에 관한 것입니다. 비록 Shoplifter를 처벌하지 못하고 보내는 한 이 있더라도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상점에서 Shoplifter에 관하여 관심과 조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대부분의 Shoplifter는 다른 상점으로 무대를 옮기기 마련이니까요. 이상 Shoplifter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상점의 규모가 충분히 커서 전문 요원을 고용하여 Shoplifting 문제를 다루는 경우는 다릅니다만, 대부분의 상점은 그런 여유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도난방지를 위한 기기들이 많이 저렴해졌고 전문 요원을 대신하여 효과적으로 Shoplifting을 막아나가는 것이 가능해 졌습니다. 미국에서 년 간 310억불이 넘는 상품이 도난 되고 있고 보통 소매상에서 총 매상의 2-5% 정도가 도난 맞고 있다는 현실을 보면서, 약간의 투자로 많은 상품을 Shoplifting으로부터 보호하고 특히 상점과 고용인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면 그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SIDEP-US, Inc 140 Moraga Way, Orinda, CA 94563 (510) 541-0400
2005-04-28 Shoplifter 어떻게 다루나?
Shoplifting 이란 상점에서 물건 가격을 지불하지 않고 훔치는 것을 보편적으로 말합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상품의 가치를 상점에서 영구적으로 빼앗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업주가 Shoplifter 붙잡아 경찰에 넘기려면 Shoplifter라고 간주하게 된 적당한 원인(probable cause)을 준비해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오해로 인해 무고한 사람을 Shoplifter로 몰아세우는 실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Shoplifter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때 이것을 반증하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Probable cause에 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다음과 같은 사항들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손님이 상점에 들어올 때 손에 어떤 물건도 들려있지 않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return하거나 상점에 있는 상품과 비교해 보려고 손님의 것을 가지고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님이 가지고 들어온 상품을 주머니에나 백에 넣는 것을 Shoplifting으로 오인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Shoplifting으로 단정하기 위하여 손님이 상점에 들어와서 특정상품으로 접근하여 고르는 과정을 지켜보았어야 합니다. 둘째, 손님이 상품을 숨기거나 몸에 지니고 떠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상품에서 가격표를 떼고 챙겨 넣거나, 먹어서 없애거나 모두 Shoplifting에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Fitting room에서 발생하는 Shoplifting을 막기 위해서는 손님이 Fitting room으로 갖고 들어가는 물품과 갖고 나오는 물품을 파악하여야 합니다. 만일 차이가 있더라고 혹시 Fitting room에 실수로 두고 나온 것이 없는지를 우선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 손님이 Shoplifting하고 있다는 심증이 있을 경우는 손님으로부터 눈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Shoplifter가 감시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숨긴 물품을 몰래 꺼내놓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Shoplifting 했다고 잡아놓았는데 몸에 지닌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면 상점을 무고죄로 걸어올 수 있습니다. 때로는 Shoplifter로 하여금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고의적으로 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됩니다. Shoplifter가 훔친 물건을 꺼내놓고 상점을 떠나도록 유도하는 것이지요. 넷째, 손님이 값을 치렀는지 안 치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손님이 일부는 값을 치르고 숨긴 물건은 값을 치르지 않고 가는 수가 있습니다. 이때 Cashier가 손님에게 숨기고 있는 물건에 대한 값을 치를 것인지 물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훔칠 의도가 없었다면 값을 치르던가 마음을 바꾸어 사지 않겠다고 하겠지만, 훔칠 의도가 있을 경우는 숨기고 있는 물건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것이고 나중에 Shoplifting의 명백한 의도가 손님에게 있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다섯째, 손님이 값을 치르고 다시 매장으로 돌아가는 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는 특정 상품의 값을 치른후 상품은 차에 쏟아두곤 상점에 다시 들어와서 기존 영수증을 이용하여 동일한 상품을 이미 값을 치른 듯 또 다시 들고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값을 치르고 매장에 다시 돌아가서 몇 가지 상품을 더 집어넣고 유유히 나가는 손님도 있습니다. 만일 발견되더라도 Cashier의 실수로 계산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할 요량이지요. 출입구에서 도난방지장치에 의하여 제지를 당하더라도, Cashier의 실수이거나 Deactivation의 문제라고 돌린다는 작전입니다. 따라서 값을 치른 손님의 거취에 관심을 기울여야합니다. 여섯째, Shoplifter를 상점 밖에서 제지하여야 합니다. 상점 안에서 Shoplifter를 잡아놓는 것은 법적으로 Shoplifting으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판례가 있습니다. 상점 밖에서 Shoplifter를 제지할 경우도 경험 많거나 훈련받은 고용인이 자신의 신분을 손님에게 정확히 밝히고 제지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도망가고 추격하거나 몸싸움이 있지 않도록 여러 명이 같이 손님을 상대하는 것도 요령입니다. 일곱째, 출입구에 설치된 도난 경보기가 경보를 울리면 손님을 Shoplifter라고 단정짓기 전에 경보가 울리게 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보가 잘못 울리는 경우의 대부분은 전파 잡음에 의한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휴대용 전화가 울리면서 간섭현상으로 경보가 울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금속 frame으로 된 출입문과 간섭에 의하여 경보가 울리기도 합니다. Cashier가 상품에 붙은 Tag을 떼어내는 것을 실수로 잊었거나, Deactivation에 문제가 있을 때도 같은 현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손님이 경보기를 통과 할 때 경보가 울리면 다음과 같은 순서를 추천합니다. (1) 손님에게 경보장치를 한 번 더 통과하도록 친절히 부탁합니다. 이때 손님이 거부할 경우 손님의 백을 강제로 조사할 법적 권한이 업주에게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2) 다시 통과하면서 같은 경보가 울리게 되면 손님은 두고 백만이 경보기를 통과하도록 합니다. 백이 경보를 울리게 한 것으로 판명되면 백 속에 Active Tag이 있다는 증거이며 손님의 자발적인 협조를 얻어 백에 있는 상품을 조사합니다. 손님 자신이 경보를 울리게 한다면 손님의 소지품 중 Active Tag이 붙어 있거나 (3) 만일 손님이 경보장치를 다시 통과 할 것을 거부하거나, 자발적으로 백을 보여줄 것을 거절하거나, 손님 자체가 경보룰 울리게 한다면 적절한 훈련과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경찰의 협조를 신속히 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덟째, 상점에서 모든 Shoplifter를 구속한다는 방침이 있지 않는 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문제는 안전에 관한 것입니다. 비록 Shoplifter를 처벌하지 못하고 보내는 한 이 있더라도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상점에서 Shoplifter에 관하여 관심과 조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대부분의 Shoplifter는 다른 상점으로 무대를 옮기기 마련이니까요. 이상 Shoplifter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상점의 규모가 충분히 커서 전문 요원을 고용하여 Shoplifting 문제를 다루는 경우는 다릅니다만, 대부분의 상점은 그런 여유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도난방지를 위한 기기들이 많이 저렴해졌고 전문 요원을 대신하여 효과적으로 Shoplifting을 막아나가는 것이 가능해 졌습니다. 미국에서 년 간 310억불이 넘는 상품이 도난 되고 있고 보통 소매상에서 총 매상의 2-5% 정도가 도난 맞고 있다는 현실을 보면서, 약간의 투자로 많은 상품을 Shoplifting으로부터 보호하고 특히 상점과 고용인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면 그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SIDEP-US, Inc 140 Moraga Way, Orinda, CA 94563 (510) 541-0400
2005-04-27 Shoplifter 어떻게 다루나?
Shoplifting 이란 상점에서 물건 가격을 지불하지 않고 훔치는 것을 보편적으로 말합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상품의 가치를 상점에서 영구적으로 빼앗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업주가 Shoplifter 붙잡아 경찰에 넘기려면 Shoplifter라고 간주하게 된 적당한 원인(probable cause)을 준비해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오해로 인해 무고한 사람을 Shoplifter로 몰아세우는 실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Shoplifter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때 이것을 반증하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Probable cause에 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다음과 같은 사항들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손님이 상점에 들어올 때 손에 어떤 물건도 들려있지 않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return하거나 상점에 있는 상품과 비교해 보려고 손님의 것을 가지고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님이 가지고 들어온 상품을 주머니에나 백에 넣는 것을 Shoplifting으로 오인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Shoplifting으로 단정하기 위하여 손님이 상점에 들어와서 특정상품으로 접근하여 고르는 과정을 지켜보았어야 합니다. 둘째, 손님이 상품을 숨기거나 몸에 지니고 떠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상품에서 가격표를 떼고 챙겨 넣거나, 먹어서 없애거나 모두 Shoplifting에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Fitting room에서 발생하는 Shoplifting을 막기 위해서는 손님이 Fitting room으로 갖고 들어가는 물품과 갖고 나오는 물품을 파악하여야 합니다. 만일 차이가 있더라고 혹시 Fitting room에 실수로 두고 나온 것이 없는지를 우선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 손님이 Shoplifting하고 있다는 심증이 있을 경우는 손님으로부터 눈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Shoplifter가 감시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숨긴 물품을 몰래 꺼내놓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Shoplifting 했다고 잡아놓았는데 몸에 지닌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면 상점을 무고죄로 걸어올 수 있습니다. 때로는 Shoplifter로 하여금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고의적으로 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됩니다. Shoplifter가 훔친 물건을 꺼내놓고 상점을 떠나도록 유도하는 것이지요. 넷째, 손님이 값을 치렀는지 안 치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손님이 일부는 값을 치르고 숨긴 물건은 값을 치르지 않고 가는 수가 있습니다. 이때 Cashier가 손님에게 숨기고 있는 물건에 대한 값을 치를 것인지 물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훔칠 의도가 없었다면 값을 치르던가 마음을 바꾸어 사지 않겠다고 하겠지만, 훔칠 의도가 있을 경우는 숨기고 있는 물건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것이고 나중에 Shoplifting의 명백한 의도가 손님에게 있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다섯째, 손님이 값을 치르고 다시 매장으로 돌아가는 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는 특정 상품의 값을 치른후 상품은 차에 쏟아두곤 상점에 다시 들어와서 기존 영수증을 이용하여 동일한 상품을 이미 값을 치른 듯 또 다시 들고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값을 치르고 매장에 다시 돌아가서 몇 가지 상품을 더 집어넣고 유유히 나가는 손님도 있습니다. 만일 발견되더라도 Cashier의 실수로 계산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할 요량이지요. 출입구에서 도난방지장치에 의하여 제지를 당하더라도, Cashier의 실수이거나 Deactivation의 문제라고 돌린다는 작전입니다. 따라서 값을 치른 손님의 거취에 관심을 기울여야합니다. 여섯째, Shoplifter를 상점 밖에서 제지하여야 합니다. 상점 안에서 Shoplifter를 잡아놓는 것은 법적으로 Shoplifting으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판례가 있습니다. 상점 밖에서 Shoplifter를 제지할 경우도 경험 많거나 훈련받은 고용인이 자신의 신분을 손님에게 정확히 밝히고 제지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도망가고 추격하거나 몸싸움이 있지 않도록 여러 명이 같이 손님을 상대하는 것도 요령입니다. 일곱째, 출입구에 설치된 도난 경보기가 경보를 울리면 손님을 Shoplifter라고 단정짓기 전에 경보가 울리게 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보가 잘못 울리는 경우의 대부분은 전파 잡음에 의한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휴대용 전화가 울리면서 간섭현상으로 경보가 울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금속 frame으로 된 출입문과 간섭에 의하여 경보가 울리기도 합니다. Cashier가 상품에 붙은 Tag을 떼어내는 것을 실수로 잊었거나, Deactivation에 문제가 있을 때도 같은 현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손님이 경보기를 통과 할 때 경보가 울리면 다음과 같은 순서를 추천합니다. (1) 손님에게 경보장치를 한 번 더 통과하도록 친절히 부탁합니다. 이때 손님이 거부할 경우 손님의 백을 강제로 조사할 법적 권한이 업주에게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2) 다시 통과하면서 같은 경보가 울리게 되면 손님은 두고 백만이 경보기를 통과하도록 합니다. 백이 경보를 울리게 한 것으로 판명되면 백 속에 Active Tag이 있다는 증거이며 손님의 자발적인 협조를 얻어 백에 있는 상품을 조사합니다. 손님 자신이 경보를 울리게 한다면 손님의 소지품 중 Active Tag이 붙어 있거나 (3) 만일 손님이 경보장치를 다시 통과 할 것을 거부하거나, 자발적으로 백을 보여줄 것을 거절하거나, 손님 자체가 경보룰 울리게 한다면 적절한 훈련과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경찰의 협조를 신속히 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덟째, 상점에서 모든 Shoplifter를 구속한다는 방침이 있지 않는 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문제는 안전에 관한 것입니다. 비록 Shoplifter를 처벌하지 못하고 보내는 한 이 있더라도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상점에서 Shoplifter에 관하여 관심과 조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대부분의 Shoplifter는 다른 상점으로 무대를 옮기기 마련이니까요. 이상 Shoplifter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상점의 규모가 충분히 커서 전문 요원을 고용하여 Shoplifting 문제를 다루는 경우는 다릅니다만, 대부분의 상점은 그런 여유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도난방지를 위한 기기들이 많이 저렴해졌고 전문 요원을 대신하여 효과적으로 Shoplifting을 막아나가는 것이 가능해 졌습니다. 미국에서 년 간 310억불이 넘는 상품이 도난 되고 있고 보통 소매상에서 총 매상의 2-5% 정도가 도난 맞고 있다는 현실을 보면서, 약간의 투자로 많은 상품을 Shoplifting으로부터 보호하고 특히 상점과 고용인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면 그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SIDEP-US, Inc 140 Moraga Way, Orinda, CA 94563 (510) 541-0400
2005-03-29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이번 기사에서는 향수도 달랠겸 이민 법률 기사가 아닌 샌프란시스코에 대한 안내를 잠깐 드릴까 한다. 베이 지역에 거주 하시는 분들은 이미 다 아시는 내용일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의 발자취가 다르니 다른 시각으로 보는 샌프란시스코라고 생각하고 읽어 주셨으면 한다. 샌프란시스코는 널리 알려진 관광지이며 예찬하는 노래도 많은데, 난 샌프란시스코를 나의 도시라고 생각할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었다. 아니러니한 것은 그렇게 어렵게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되자 또 떠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도착해서는 일에 빠져 눈 떠서 감을때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일했었다. 그러다 보니 도시를 즐길 생각을 갖지 못했었다. 그 때 뉴욕에 있는 남동생이 출장다녀 오는 길에 샌프란시스코에 들렸었는데, 나도 아직 익숙치 못한 때라 얼마나 엉터리로 구경을 시켜 주었는지 지금도 샌프란시스코가 무슨 낙후된 별 볼일 없는 곳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동생과 도시 양 쪽에 미안한 생각이 든다. 1. 안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하기전 워싱톤에 원래 근무하던 로펌의 비서가 이 곳 출신이라 이것 저것 물어보았었다. 우리 비서는 나이가 지긋한 남자 분이었는데 사연이 많은 사람이었다. 원래 샌프란시스코 출신으로 Bank of America에 경영직에 있던 분이었는데 80년대 많은 친구들을 AIDS로 떠나 보내고 나서 그 기억을 견디지 못해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친구 변호사가 있는 우리 로펌에서 비서로 소일 거리를 하던 사람이었다. 나한테 샌프란시스코 이야기를 하며 아침에 Twin Peaks를 따라 안개가 밀려왔다 거친후 저녁에 다시 찾아오는 모습을 묘사하다 눈시울을 붉히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이 도시를 사랑했었을까, 사랑하는 곳을 떠나 일부러 객지를 찾은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직도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 안개와 바닷바람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의 공기는 무척 맑다. 거기다 캘리포니아 특유의 건강한 생활 방식으로 담배 피는 사람이 없어 더 더욱 공기가 깨끗하다. 따라서 건물들도 밝은 색이다. 오전 10시 11시가 되오며 안개가 거치고 해 아래 하얀 빌딩들이 반짝일때면 아름답다는 찬사가 절로 튀어나오곤 한다. 내 다른 캐네디언 친구는 샌프란시스코를 자연 냉방된 곳이라고 부른다. 안개와 함께 찬 공기가 도시를 아침 저녁으로 채운다. 캘리포니아라고 무조건 따뜻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8월 한 여름에 반바지 반 팔 입은 사람은 관광객이 틀림 없다.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은 여름에도 아침 저녁으로 얇은 코트를 입고 안에는 긴 옷을 입는다. 마크 트웨인이 ‘내가 보낸 가장 추운 겨울은 샌프란시스코의 여름이다.’라고 했을 만큼 1년 내내 서늘한 곳이다. 연중 반팔 반바지를 입어도 될 만한 때는 초가을 짧은 기간 동안이다. 2. 49 mile 샌프란시스코는 7x7, 면적이 49mile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도시이다. 이 작은 도시 구석 구석 발견할 것들이 참 많다. 샌프란시스코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언덕이 많은 도시라고 한다. 언덕이 많은데다 지진에 대한 우려로 건물높이가 낮다 보니 곳곳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주말에 샌프란시스코 특유의 주택 건축 양식을 감상하기 원한다면 편한 운동화를 신고 Russian Hill을 걸어 보자. 다리가 아프면 코너마다 있는 동네 카페나 바에서 쉬어갈 수 도 있다. 토요일에는 Embarcardero의 Pier 1에서 열리는 Farmer’s Market에 들렸다 항구를 따라 Pier 39 까지 걸어가 보는 것도 괜찮다. 물한병과 마음에 드는 sunglass만 있으면 되는 관광 코스이다. 정 자연이 그리워 질 때면 금문교를 넘어 Muir Woods에 가서 redwood forest를 경험하자. 난 자연에 대해 잘 모르지만 redwood는 캘리포니아에서만 볼 수 있다고 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키다리 나무들사이로 흐르는 냇물 소리와 그 나무 향에 온 몸이 정화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3. Restaurant and Music 다른 도시들에 비해 샌프란시스코는 저렴하게 전 세계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피아노 재즈를 좋아해 즐겨 핯던 곳들은 이태리 식당들이 총집합해 있는 North Beach 지역에 위치한 Enrico’s와 금융가 남쪽에 있는 Shanghai 1930가 있다. 저녁도 맛있지만 wine 한 잔과 Jazz 음악을 부담없이 즐길 수 있으며 배경도 아름다운 레스토랑들이다. 야경과 시간을 초월한 음악을 즐기자면 Mark Hopkins Hotel 위에 위치한 Top Of the Mark 를 빼놓을 수 없다. 다운타운의 Union Square 부근에 있는 Starlight Room도 음악과 야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두 곳 다 9시 전에 찾으면 입장료를 내지 않는다. 이 두 곳다 소위 엘리트들이 즐기는 곳이지만 프라이빗 키도 필요 없고 비용도 비싸지 않다. 정보만 있으면 아무 여행객이 가도 즐길 수 있는 곳들이다. 내가 샌프란시스코를 정말 사랑하는 이유는 클라스, 인종, 성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곳이라는 것이다. 백만장자도 평범한 차림의 옷으로 운전사 없이 다니고, 유색인도 백인만큼 유능하다고 인정 받아온 곳이며, 개인사에 대해 각자의 선택에 대한 여유를 주는 곳이기 때문에 누가 어디를 가도 어색하지 않은 배려를 베푸는 매너를 갖춘 곳이다. 물론 예약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 Gary Danko 레스토랑도 있고, 음식 비평가들이 선호하는 Michael Minna도 있지만, 그외 구석 구석 아름답고 맛있고 쉽게 찾을 수 있는 레스토랑들이 너무나 많다. 특히, 프랑스 음식과 베트남 음식을 결합한 유명한 식당들이 여럿 있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곳은 Ana Mandara와 Le Colonial이다. 최금 유명해진 Slanted Door보다 훨씬 더 클래식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정통 Pizza를 모던한 분위기에 먹기 원한다면 Lulu를 권장하며, 중국 전통 Hot Pot을 찾는 분들에게는 Koi Palace를 권한다. 해산물이 유명한 곳 중 아름다운 분위기를 겻들이기 원한다면 옛날 수영장을 개조한 Farallon을, 만약 정통 어메리칸 스타일의 신선한 해물 요리를 원한다면 Sam’s Grill을 권한다. 4. Wine Valley 샌프란시스코를 다 탐색하고도 시간이 남는다면 Napa와 Sonoma를 찾아 보는 것은 어떨까? 약 한시간 드라이브 거리인 wine valley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wine을 생산하는 곳이다. 이 곳에 가면 마치 캔디 가게에 온 어린아이처럼 여기 저기 보는 곳마다 들리고 싶을 만큰 예쁜 winery들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너무 상업적으로 변한 Napa보다는 Sonoma의 winery들이 더 마음에 든다. 길도 복잡하지 않고 사람에 치이지도 않는다. 제대로 된 wine tour를 하기 원하는 분들은 St. Supery winery를 찾아 볼 것을 권장한다. 겉보기에는 소박하나 wine tour만큼은 성의있게 베푸는 곳이다. Wine tasting을 하다 보면 자연히 이태리나 프랑스 풍 요리가 당기기 마련이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La Tocque, Bistro Jeanty, La Tra Vigne, Don Giovanni 등을 추천한다. La Tocque는 코스와 메뉴가 정해져 있어 배고플때 가는 것이 좋겠다. Bistro Jeanty는 정통 Country French 음식을 서브하며, La Tra Vigne 와 Don Giovanni는 이태리 못지 않은 신선하고 저렴한 이태리 음식을 선사한다. 이렇게 샌프란시스코에 대해 적다 보니 옛날 우리 비서처럼 눈시울이 뜨거워 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곳이던 뿌리를 내렸던 곳에 대해 우리는 부질 없는 애착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몇년 후면 뉴욕에 대해 인사이더 스토리를 드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며, 여러 독자 분들이 샌프란시스코를 찾을 때 아름다운 기억을 만들고 가시기를 바란다. Copyrighta Judy J. Chang. All rights reserved. 기사에 대한 의견이나 질문은 글쓴이에게 보내기시 바랍니다 (jchang@jgloballaw.com)
2005-03-15 샌프란시스코의 중국 음식(쥬디 장)
이 칼럼을 읽어 주시던 분들은 필자가 오랜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있었다는 것을 아마 아실 것이다. 최근 뉴욕 맨하탄으로 옮기며 미처 인사 못드린 분들에게 이 글을 통해 사죄하는 마음을 전한다. 이민법만 전문으로 다루다 보니 전문성을 갖고 서비스를 드릴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자부심을 갖었으나, 보다 종합적인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고객 분들을 접하며 본인의 전문성을 살리며 다른 전문 분야의 변호사분들을 통해 포괄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종합 로펌을 통해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되었다. 이민법은 연방법이라 어느 곳에서도 지역에 상관없디 고객분들의 케이스를 담당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었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샌프란시스코가 무척 그립다. 문화가 있었고 무엇보다 참 좋은 분들이 많은 곳이다. 그 당시 금융가에서 일했기 때문에 주변에 인기 있는 중국 식당이 많이 있었는데 그 당시 에피소드가 기억이 난다. 어느 날 점심을 먹던 중 옆 테이블의 중국계 남자분이 드시는 음식이 유별나 보여 그 음식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 남자분은 이름을 가르쳐 주는 대신 더 맛있게 만들 수 있는데 캘리포니아의 중국 음식 질이 날이 가면 갈수록 떨어진다고 한탄을 했다. 친절하고 유쾌한 사람 같았는데, 중국음식에 대해 얼마나 마음에 안 들었는지 싼 재료, 솜씨없는 주방장을 이용하지 않고 제대로 만든 중식을 먹기 위해 캐나다의 밴쿠버로 간다고 했다. 그 분의 의견에 수긍을 하고 난 후 함께 식사를 하던 친구 변호사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중국 음식처럼 이민 변호사를 비롯한 전체 미국 법률계의 질도 날이 가면 갈수록 퇴보하고 있지 않은가 의견을 나누게 되었다. 수 많은 법대를 통해서 자질을 갖추지 못하고 또 제대로 훈련 받지 못하고 대량 생산 되는 많은 변호사들이 과거 변호계의 기본 도덕과 변호 수준에 미달하는 행동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질에 상관 없이 대용품을 쓰는 대중이 이를 부추길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미래를 도박한다는 것이다. 내가 내 자신의 케이스를 맡을 수 있을까? 간단한 이민 문제를 대할 때, 본인이 직접 다루는 것이 가능할 때도 있지만, 간단해 보이는 경우에도 전문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것을 권한다. 미국 이민법은 복잡하기도 하지만 수시로 변동을 한다. 더우기 아주 기본적인 실수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보통 이민 케이스는 이민국, 외무부, 노동청등 적어도 셋 이상의 정부 행정 기관을 거치게 되는데, 문제는 정부 기관 직원들중 본인의 의무가 마치 외국인이 미국에 침투하는 것을 방어하는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민 신청을 잘 하도록 신청자를 도와주거나 충고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으시는게 좋겠다. 개인은 접어두고, 변호사라 할지라도 꾸준히 이민법을 다루어오지 않은 변호사라면 전체 수속을 마칠때까지 문제를 접하지 않을 확률은 무척 낮다. 많은 분들이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야 전문 변호사를 찾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미 바로잡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있을 가능성이 높고, 그만큼 정신적, 시간적, 그리고 금전적인 비용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민 컨설턴트 혹은 브로커를 고용해도 될까? 이민 컨설턴트나 브로커는 변호사를 고용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이나 또는 본인이 직접 처리하고 싶지 않은 다양한 종류의 일을 부탁하기 원하는 분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감초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이민 컨설턴트나 브로커가 변호사의 충고 없이 직접 법률에 관한 조언을 할 때는 큰 위험이 따른다고 본다. 물론 오랜 경험을 갖고 있는 컨설턴트도 많이 있지만, 이민 컨설턴트 혹은 브로커가 되기위해서는 아무 종류의 훈련이나 경험이 필요하지가 않은데다 그들의 비즈니스를 관리하는 기관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겠다. 변호사 선택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거 문제 해결을 위해 특정 분야의 변호사나 의사를 물색해 보신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본인의 상황에 맞는 전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설명하기 어려운 사적이고도 복잡한 문제를 다루다 보면 변호사와 고객의 관계는 무척 긴밀하고 오래 지속되는 관계로 진행될 때도 많다. 이처럼 변호사와 고객의 관계는 양쪽 관계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생에 몇 번 만나보지 못하는 인간 관계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그 특정 분야의 전문 변호사로서 평판도 좋을 뿐 아니라 함께 일을 진행하기 수월하도록 성격이 맞고 고객의 앞날에 관심을 갖는 변호사를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 고객의 미래가 자신의 미래인 듯 가치있게 생각하는 변호사는 찾기 힘들지만 그만한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다. 필자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이후로 시간을 활용하는 선택을 할 때 ‘기회의 대가 (opportunity cost)’를 계산하는 버릇을 갖고 있다.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A라는 활동을 하게 되면 그 시간 동안 B나 C와 같은 활동을 포기해야 하는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는 공식인데 주어진 시간에 본인에게 가장 가치있는 일을 하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시각이다. 이 공식에 비추어 개인적으로 본인이 잘하는 일, 즐기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다른 분야의 일은 그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대담하게 맡기는게 좋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에게나 가치있는 일만 하고 살아도 짧은 게 인생이 아닐까? 미숙하게 처리된 이민 일로 걱정하시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신중하시기를 바란다.
2005-02-10 스스로 미국의 황제라고 선포한 사람: Norton I
누군가가 벗어 버린 것 처럼 보이는 아주 낡은 육군 대령의 복장을 걸친, 초췌한 사람이, 어느날, San Francisco Bulletin 신문사로 들어 오더니, 편집인에게, 짤막하게, 이렇게 말을 했다. “I am the Emperor of the United States (내가 미 합중국의 황제요.)” 그 신문의 편집자는, 그냥 재미 삼아서, 그 사람의 황제 선포를, 그 다음날 신문의 첫 페이지에다, 기사로 올려 놓았는데… 그 날이 바로, 1859년, 9월 이었다. [San Francisco를 20년간이나 다스렸던 황제: 노오튼 1세] 바로, 그날 부터, 그 사람- Joshua Abraham Norton 황제-는, 20년간 이나, San Francisco에서 황제로 살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산 프란시스코 시민들이 그를 황제로 취급하여 주었기 때문이다! Norton은, 1819년에, 영국에서 태어 났는데… 그가 두살 때에, 그의 부모가 남아프리카로 이주하는 바람에, 그 남아프리카로 가서, 그곳에서 자랐는데, 아버지와 함께 농사도 짓고, 부두가에서 선박 잡화상도 하면서 지냈다. 그러다가 1848년, 그의 나이 29살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자, 그는 모든 것을 팔아 버리고는, Brazil 로 옮겨갔다. 바로 그 때 쯤에, San Francisco에서 Gold Rush가 일어나게 되자, 그도 1849년 11월에 San Francisco로 옮겨 왔는데, 그 때, 그의 손안에는 4만불이나 들어 있었다. 그는, 새로 번창하는 그 곳에서 사업을 벌려 보기로 하고, 시내에서 잡화점 가게를 하면서 또한 부동산에도 투자를 하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번창하게 되어서, 1853년에는, 25만불의 재산이 되었다. 그 때, 그는 더욱 욕심이 생겨서, 쌀의 독점에 손을 대기 시작 하였는데, 그 바람에, 쌀 값이 올라가서, 그가 파운드 당 4센트에 사들인 쌀이, 32센트로 올라 갔으나, 그는 아직도 되팔기를 거부하고 계속 비축만 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예고도 없이, 남미 지방에서, 갑자기 많은 양의 쌀들이 들어오는 바람에 쌀값이 폭락하게 되어서, 그는 크게 손해를 보게 되었고, 그 후 2년 후에, 파산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해서 무일푼의 빈털털이가 되자, 자기 스스로, ‘미 합중국의 황제’로 선언을 하게 된 것이었고… 신문사에서 그에게 호의를 보여주자, 그는 이따금 그 신문에 ‘An Edict (황제 칙령)’이라는 것을 발표 하고는 하였다. San Francisco 시민들은, 신문에 실리는, 그의 칙령을 읽기를 즐거워 하였고, 또한 대부분의 시민들이, 그에게 ‘황제 예의’를 갖추기도 하면서, 그 사람을 특별 취급하여 주게 되었다. 마침 그 당시에 멕시코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일어나게 되자, 그는 Mexico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능력이 없으므로, 자기가 “Protector of Mexico (멕시코 호민관)”까지 겸임 하겠다고 선언 하였다. 자기의 좁은 방 벽에다, Napoleon 과 Victoria 여왕의 사진을 걸어 놓고서는, 그 곳을 황실이라고 하였고, 매일 오후가 되면, 개를 데리고 시내를 순찰하게 되었는데… 그가 하는 일이란… 하수도의 점검, 시내 전차가 시간표 대로, 제대로, 운행이 되는가? 하는 것을 자세히 살펴 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일요일이 되면, 매주, 다른 교회의 예배에 참석 하면서, 모든 교회를 순방하는 것이었다. 극장의 주인이, 그에게 ‘황제 좌석’을 하나 마련해 주었는데, 그가 극장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극장 안의 청중들이 모두 다 조용히 일어나 있다가, 그가 그 ‘황제석’에 앉은 후에야 자리에 앉고는 하였다. 식당에서도 그에게 무료로 음식을 대접하게 되었고 전차 요금도 무료가 되었다. 사실상, 거지나 다름없는 그 사람이, 그런 대접을 받는 것에 질투가 난 경찰관이 그를 Vagrancy (부랑 행위)로 체포 하였는데… 시민들이 경찰서로 몰려와서 항의를 하는 바람에, 경찰 서장이 직접 나서서 사과를 하고, 손수 그 황제를 풀어 놓아야 되었다. 1861년에 Civil War (미 남북전쟁) 이 일어나게 되자, 그 황제는 근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다가, Lincoln 대통령과 Jefferson Davis (President of the Confederacy) 를, San Francisco로 소환 하는 명령을 내렸다. (자기가 양 쪽 편을 다 불러서 중재를 하겠다고.)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의 소환에 응한 사람이 없었다. 그가 입고 다니는 군복이 더욱 더 낡고 빛이 바래서 이제는 넝마처럼 되어 버렸는데… 그가 신문에 이렇게 발표를 하게 되었다 “Know Ye… That We, Norton the First, Have divers complaints from Our liege subjects… That our imperial wardrobe is a national disgrace. (여러분! 황제에게, 臣民(신민)으로 부터 다양한 불평의 소리가 들어오고 있는데… 황제의 의상실이 너무나 초라한 것은, 바로, 국가적인 망신이고 수치라는 것 입니다.)” 그러자… 바로 그 다음날, 시 의원회에서, 그에게 새로운 옷을 지불해 주도록 투표로 결정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여러가지 혜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돈에 궁할 수 밖에 없었기에… 또다시 Imperial Edit (황제 칙령)을 내렸으니… “황실의 재정 상태가 어렵기 때문에, 세금 제도를 만들게 되었다. 따라서, 상점은 일주일에 25- 50센트, 은행은 3불의 세금을 징수 하겠다.” 라고 발표 하였다. 시민들은 이번에도 크게 웃었지만… 아무튼, 거의 모든 가게들이 그에게 세금이라는 것을 내 놓기는 하였다. 이토록, San Francisco 시민들은, 그에게 신민으로서의 충성심을 보여 주었는데… 1880년 1월 8일, 그가 죽게 되자, 그의 관에 조의를 표시 하였던 사람들이 일만명이나 되었다. 그후, 오랜 세월이 지나간 다음, 1934년에 와서, Woodlawn Cemetery에 있는 그의 무덤 앞에도 비석이 세워지게 되었는데, 그 비석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Norton I, Emperor of the United States and Protector of Mexico, Joshua A. Norton 1819-1880 (노튼 1세, 미국의 皇帝이며, 멕시코의 護民官(호민관) 조슈아 노튼 1819-1880)” ----------------- 자칭 미국의 황제였던, 그 사람- Joshua Abraham Norton 황제-도 갔고, 그를 애교로 봐 주었던 그때 그시절의 그곳의 그러나… San Francisco는 그대로 남아 있다. 바로, 아래와 같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글/ 閑超(한초) 이상봉(철학박사) *Dr. Lee’s Closing Arguments (무단 복제 사용을 금함.) *강좌, 저서에 관한 문의나 연락은, P.O. Box 52063, Philadelphia, PA. 19115